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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Oct 11. 2024

문둥이와 상이용사

 요람처럼 나를 감싸고 있었던 한옥에서 가족이 아닌 외부 사람과 접촉한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어렸던 나이이기에 내가 자극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없다면 사람이 되었던 일이 되었던 여태 기억에 터 잡고 머물러 있을 리가 없다.

사실 가족 간의 일이라도 기억의 창고에 머물러 있는 것이 많지는 않다.

사라진 기억의 대부분이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은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서도 유독 뚜렷하게 기억되는 사람들이 있다.

구걸 행각으로 일반인들에게는 기피의 대상이 된 사람들로 나병에 걸려 일반인과 섞여 살 수 없는 나환자와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육신을 상한 상이군인이 그들이었다.

거의 집안에서만 생활했던 내가 이들을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미처 문단속을 하지 못한 대문을 밀고 이들이 구걸을 위해 집 안으로 진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별 말없이 나환자에게는 쌀을, 상이군인에게는 돈을 건네주곤 했다.

불필요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때때로는 불쾌한 상황이 야기되기도 했었는지 뒤에 어머니께서 대문을 열고 소금을 뿌리는 적도 간혹 있었다.


 그 시절에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던 나환자이지만 사람들은 나병이라는 질병에 무지했다.

나병이 심각한 외모의 훼손을 가져오기 때문에 나환자는 일반인에게는 혐오를 크게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나환자를 문둥이라고 얕잡아 불렀다.

내 고향인 경상도 말로는 문디라고 불렀다.

지금도 다른 사람을 질타하고 흉볼 때 경상도에서는 "아이고, 이 문디 자슥아"라고 말한다.

이처럼 일상의 언어 습관에 스며들 만큼 나환자는 세상의 철저한 기피대상이었다.

오죽하면 나병을 일컬어 천형, 즉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했을까.

지구상에서 풍토병으로 자리 잡게 된 역사도 오래되어 성서에 기록되지 않았는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병의 심한 후유증과 강한 전염성으로 해서 일반 사람과 섞일 수 없는 존재가 나환자였다.

좀 더 커서 이사 간 동네에서 듣게 된 소문이 이를 말해 준다.

가까운 동네에 사는 한 아주머니가 나병에 걸렸는데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사람들이 모두 잠든 밤에 나환자가 찾아왔더란다.

그리고 나병에 걸린 아주머니를 데리고 갔다는 소문이 하룻밤 사이에 널리 퍼졌다.

이미 가정을 이루고 있었던 아주머니였지만 가족과는 같이 할 수 없었던 병이 나병이었다.

게다가 미당이 시로 쓴 바와 같이 나병에는 어린이의 간이 특효라서 나환자가 어린이를 납치, 간을 빼먹는다는, 근거 없는 풍문까지 나돌아 어린아이에게 나환자는 혐오를 넘어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병에 걸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찾아온 병마와 싸워 항상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염의 위험이 크다면 격리와 더불어 적절한 보호와 치료가 필요한 것이지 방치하고 인격에 모욕을 가할 일은 아니다.

이것이 모두 위생 환경이 열악하고 보건 정책이 미비했던 시절의 누추한 자화상이었다.


 앞서 언급한 어머니의 불쾌함은 대개 상이군인의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환자가 일반인을 대할 때 줄곧 수동적인 입장이 되지만 상이군인은 피해의식이 지나쳐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으리라 생각된다.

내 기억으로도 일부러 옷소매 사이로 차가운 금속 갈고리를 드러내고 가급적 험상궂은 표정으로 버티어 서 있던 상이군인이 눈에 선하다.

나라를 위해 전장에 나갔다가 몸을 상하고 돌아왔지만, 상이용사라는 허울 좋은 상찬만 있었지 아무 보상도 없이 성하지 않은 몸으로 생계마저 막막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버린 국가와 세상에 대하여 적개심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것이 그때는 나라가 그들의 희생에 제대로 보답할 능력이 없었다.

보답은커녕 그들에게 모멸감을 안겨준 것이 국가와 사회였다.

어쩌면 상이용사라 불리는 그들이야말로 전쟁의 상흔을 몸과 마음에 지닌 채 여전히 가난했던 1960년대의 시대상우울하게 대변하고 있었던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환자와 상이군인, 흔히 하던 말로 문둥이와 상이용사는 내 유년기의 기억으로는 유일하게 우울한 풍경이었다.

그들과 나, 혹은 일반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고 선 우울이 아득한 거리를 만들고 있어 그때는 보고도 느낄 수 없었지만, 아마도 그들은 속으로 피 울음을 삼키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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