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는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으로 가기 위한 통과 의례와 같은 것이다. 주로 6~7월에 걸쳐 지루하게 내리는 장마가 끝난 후에야 무더위를 동반한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들게 된다.
온 세상이 비에 젖어 눅눅해지는 장마철을 반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살림하는 주부들은 빨래가 마르지 않아 짜증이 늘어만 갈 것이고, 운전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흐린 시야와 안전 때문에 평소보다 더 신경을 쓰게 되어 피곤이 더할 것이다. 그리고 제 아무리 비를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를 몇 날이고 계속해서 겪게 되면 생활은 물론 마음까지 온통 후줄근해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질리도록 내리는 것이 아니라면 비는 사람의 정서를 고양시키는 긍정적인 일면 또한 있어 비를 소재로 한 음악이 유독 많다. 클래식 음악으로는 먼저 브람스의 가곡 '비의 노래'와 이 가곡의 선율을 사용한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 '비의 노래'가 떠오른다. 그리고 대중음악으로는 김현식이 부른 '비처럼 음악처럼'이 널리 사랑받고 있는 가요이고, 프랑크 시나트라를 비롯한 많은 가수들이 부른 'September in The Rain', 그리고 사이먼 버터플라이가 부른 'Rain, Rain', 호세 펠리치아노의 'Rain' 등 등 헤아릴 수 어려울 만큼 많은 노래가 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비와 상관이 없지만 비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쇼팽의 '전주곡'을 빼놓을 수 없겠다.
음악에 겹치는 비의 이미지
24곡의 전주곡은 쇼팽의 창작력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인 1838년에 작곡된 피아노 독주곡으로 24개의 각기 다른 조성의 곡들이 장조와 단조가 교차하면서 다양한 표정을 나타내도록 작곡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음악적으로나 인기라는 측면에서도 쇼팽의 대표적인 음악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곡이다.
특히 이 곡은 쇼팽과 조르즈 상드와의 사랑과 관련되어 더욱 사랑받고 있는 것 같다.
1936년에 리스트의 소개로 프랑스의 여성 소설가 조르즈 상드를 만나게 된 쇼팽은 이듬해부터 그녀와의 관계가 가까워져 1838년에 두 사람은 마요르카 섬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쇼팽은 이 24곡의 전주곡을 작곡하게 되는 것이다.
마요르카 섬에서 두 사람은 행복했지만 비가 많은 그곳의 환경이 폐가 나쁜 쇼팽의 건강을 해치게 되었다. 이에 상드의 극진한 보살핌이 있었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 결국 1839년 2월 두 사람은 마요르카 섬을 떠나 파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 후에 두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소원해져 갔고, 냉담해진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예로 1848년의 쇼팽의 장례식장에서 상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씁쓸한 연애담이지만 상드와 함께 한 시기에 쇼팽은 이 24곡의 전주곡을 비롯한 왈츠, 마주르카와 폴로네이즈 등 주옥같은 명곡을 작곡했으니 사랑의 힘은 실로 위대한 것이라 하겠다.
이 곡의 15번째 곡, 우리가 빗방울 전주곡이라 부르는 곡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져 온다.
"비 내리는 마요르카 섬의 보금자리에서 외출한 상드를 기다리는 쇼팽. 병으로 기력이 많이 쇠했지만 쇼팽은 비를 뚫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상드를 위해 피아노에 앉아 비를 닮은 곡, ' 빗방울 전주곡'을 연주하고......"
물론 훗날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이다. 빗방울 전주곡이란 부제도 쇼팽은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팽의 전주곡을 들을 때 비가 떠올려지는 것이 비가 많은 마요르카 섬의 환경이 곡의 분위기에 영향을 끼쳤는지, 아니면 쇼팽과 상드에 관련된 러브스토리의 이미지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24곡의 전주곡에는 내리는 비의 실루엣이 음악의 전반에 드리워져 있다는 느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