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암(顧菴) 이응로의 군상(群像) 연작
동베를린 간첩단사건은 우리 현대사의 굴곡진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 사건이 1967년에 벌어진 일이기에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 없다. 다만 훗날 기록을 통해 사건의 개요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 독재자의 죽음으로 종말을 고한 시대가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언급이 가능했던 역사적 사실이었다. 동백림사건(東伯林事件)이라는 예스런 표현이 친숙한 이 사건은 그 내용보다는 이에 연루되었던 인사들의 굴곡진 삶으로 기억된다.
2006년에 이르러 비로소 국가 권력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인정된 베를린 간첩단사건은 베를린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베를린을 거점으로 암약한 간첩단을 일망타진했다고 국가가 발표한 사건을 말한다. 유죄를 받아 옥고를 치른 일부의 사람이 동베를린에서 북한 사람을 수차례 접촉한 사실이 있었다지만 이를 간첩사건으로 엮기에는 무리였지만 국내의 정치 사정, 즉 6.8 부정선거에 대한 규탄 시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조작된 시도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물론 휴전이라는 상황에서 적성국가의 사람과 허가 없이 접촉했다는 사실 자체가 범죄행위일 수는 있다. 그러나 분단 현실에서 가지는 민족의 반쪽에 대한 궁금증까지 이념적 경도로 몰아붙일 이유가 달리 없었다.
국가는 간첩단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국외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국내에 사람들까지 같은 사건으로 엮었다. 사람들은 사건의 조작에 필요한 자백을 얻기 위한 고문과 뒤 이은 복역으로 모진 고초를 겪었다. 이때 국가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 중에서 기억되는 이름들이 있다. 바로 재독 작곡가 윤이상과 재불 화가 이응로, 그리고 시인 천상병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모두가 자신의 분야에서 분명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다. 모두 일정기간을 복역한 후 조국을 등지거나 평생을 사건이 남긴 후유증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았다. 세 사람 모두 이 사건으로 해서 굴곡진 삶을 살아야 했겠지만 특히 이후의 행적으로 평가가 나누어지는 화가 이응로의 삶과 예술을 언급해 보기로 한다.
고암 이응로는 1924년에 당시 최고 권위의 조선미술전람회(줄여서 '선전'이라고도 한다)에 입선, 일찌감치 우리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일본에 유학하였으나 일본의 화풍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우리 화단에 팽배했던 일본화풍을 배재한 한국화를 주창했다. 해방 후 홍익대학교에서 후학을 지도하다 1958년 돌연 프랑스로 떠나 서양화 기법을 도입한 콜라주 작품을 제작하고 문자를 형상화한 문자추상을 시도함으로써 동양과 서양의 화법이 결합된 작품으로 프랑스 화단에서 입지를 다졌다.
이응로가 동베를린 간첩단사건에 휘말린 것은 한국전쟁 당시 헤어져 남북으로 떨어지게 되었던 아들을 만나기 위해 동베를린을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국내법으로는 불법이었지만 아들을 향한 부정의 발로가 간첩사건으로 둔갑되는 기막힌 사건의 출발이었다.
이 일로 국내에서 복역까지 한 이응로의 상처가 마음에 깊을 수밖에. 국내 화단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던 이응로가 국내 화단과는 관계가 끊기게 된 것은 자신과 부인 박인경이 백건우, 윤정희 부부 납치사건에 연루되면서부터였다. 이 사건으로 이응로에 대한 예술적 평가가 유보되었음은 물론 인간적인 평가도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응로가 무리를 이룬 인간들을 형상화한 '군상' 연작을 그리게 된 것은 1980년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겪었던 독재정권을 뒤 이은 또 하나의 권력에 의해 자행된 학살에 어떤 기분이었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권력에 의해 부당한 피해를 입었던 당사자로서는 분노와 함께 권력의 피해자에 대한 애정과 연민의 정이 각별했을 것이다. 이응로의 그 마음이 작품으로 나타난 것이 '군상' 연작이었다. 마찬가지로 동베를린 간첩단사건의 피해자인 작곡가 윤이상이 광주의 소식을 듣고 교향시 '광주여, 영원하라'를 작곡한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이들 해외 체류 예술가들의 친북 성향과 활동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을 품어주지 못한 조국에 대한 배신감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이응로의 '군상' 연작에는 우리 현대사의 부끄럽고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군상의 모습이 공히 역동적이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작품에 따라 군상들이 주춤거리거나 방향 없이 휩쓸리는 모습도 보인다. 역사의 방향을 트는 전환점에는 언제나 동일한 목적과 방향을 지향하는 동인 만이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필연이라고 여기는 역사의 진행에는 사실 우연이 많이 개입하고 있다. 군사독재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정치적 상황을 '군상' 연작에 대입할 때 역사에 대한 회의와 전체의 오류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흔히 지금의 우리는 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로 지나치게 분열되어 있다고 한다. 근간의 정치 현장에서 일베, 태극기 부대나 개딸과 같은 극단적인 정치 지향이 등장, 현실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상을 볼 때 균형감 없이 한쪽으로 치우친 다수의 오류와 그 위험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양비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든 보수든 극단적인 정치 지향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이런 논의 자체에도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조용한 다수가 아닌 시끄러운 소수가 오히려 다수인 양 세력화되고 있는 현실이 우려가 된다. 이응로의 '군상' 연작을 보면서 새롭게 하는 생각이다. 그림 속 사람의 무리가 마치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듯 요지부동인 시끄러운 소수의 부풀려진 모습인 듯하다. 그리고 군상의 형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아픈 자화상을 마주 보는 듯도 하다. 지난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아픔을 일깨우는 '군상' 연작에 대하여 내 나름으로 해 보는 어쭙잖은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