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숲 속에서의 삶'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인기 TV 프로그램이 있다. 본방송이 아니라도 여러 채널에서 지난 방송분을 수시로 볼 수 있다. 그 빈도가 과하다 싶을 정도다. 그만큼 이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호응도가 높다는 뜻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만큼 자연이 아닌 도시(전통적인 부락의 형성이 자연에 깃들인 것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현대적인 도시는 정반대로 자연을 훼손하여 형성된다는 차이가 있다. 산을 깎아 동식물의 보금자리를 훼손하고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도로를 깔아 지구의 숨통을 막아 버리며 형성된 것이 도시인 것이다)에서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낀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도시에서의 삶에 불만을 야기하는가. 그 해답이라면 '부조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원래 자연의 일부였던 우리가 스스로를 자연으로부터 분리했으니 그 삶이 조화롭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나아가서 조화롭지 않은 사회에서 맺어진 사람 사이의 관계도 언제나 조화로운 것은 아니다. 이해관계로 얽힌 사이에서는 마찰이 더 빈번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자연인이다'의 출연자 중 다수가 어려운 육체의 질병이나 사회생활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목적으로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는 자연이 마지막 선택지였다는 뜻이다. 육체의 질병이든 마음의 상처든 결국은 삶이 조화를 잃어버린 결과로 치유를 위한 자연으로의 회귀는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간혹 급박한 사정없이 자연의 품으로 돌아와 정착하고 있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출연자의 대부분이 절박한 사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에서 살아간다는 일이 결코 쉽지 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생활의 불편은 물론,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는 만큼 도시에서 구가했던 편리 중에서 많은 것을 포기할 각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길들여진 문명의 편리를 떠나 야생의 불편을 감수하기가 쉬운 선택일 리가 없다. 문명의 이기를 덜 누리는 만큼 삶은 단조로울밖에. 더불어 마음과 영혼까지 산만하지 않고 정화되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꿈꾸는 조촐하면서 정화된 삶이지만 실행으로 옮기기에 쉽지 않은 길을 앞서 살아간 사람들이 있다.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가 그렇고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만나게 된다. 특히 소로는 생태주의의 원조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의 사상은 레프 톨스토이와 마하트마 간디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소유의 법정스님이 그의 사상에 대하여 언급한 적이 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사상이 전적으로 소로의 영향에 의한 것일 리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영향은 주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평소에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등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이었던 소로는 '시민 불복종'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그러나 소로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시대가 지나도 기억되게 한 것은 생태주의 사상과 운동의 고전인 '월든'이라는 한 권의 책이다.
월든은 소로가 평생 살았던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소도시 콩코드에 소재한 월든 호숫가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생활한 체험을 쓴 책으로 정식 제목은 '월든- 숲 속에서의 삶'이다. 이 책이 단순하게 자연에서 생활한 체험기에 머물렀다면 그 명성이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월든에는 자연과의 체험에서 비롯된 소로의 사유가 빛을 발한다. 소로는 자신이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숲으로 들어간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의도한 대로, 삶의 정수 만을 직면하여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그랬을 때 삶에서 배워야 할 것을 다 배울 수 있을지 알고 싶었고, 죽음이 닥쳤을 때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음을 깨닫고 싶었다" (더스토리, 전행선 역)라고.
그리고 소로는 "간소하게, 또 간소하게 살라"라고 조촐한 삶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같은 책) 이는 삶에서 최소한의 필요 충족을 말하는 것으로 법정스님의 무소유 사상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소로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삶을 공정하고 현명한 눈으로 관찰하려면 우리가 소위 '자발적 빈곤'이라고 부를 만한, 그런 고지에 올라야만 한다. 농업이든 상업이든, 문학이나 예술 어느 분야든, 사치스러운 삶을 통해 이루어낸 결실은 사치뿐이다." (같은 책)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주택 문제, 즉 부동산 투기로 인해 부의 불균익이라는 문제에서 주목할 만한 소로의 언급이 있다.
"아무리 미개한 부족이라 할지라도 각 가정에는 최고의 주택에 못지않은 집이 하나씩 있었다. 가족의 소박하고 단순한 욕구를 채워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심지어 하늘을 나는 새에게도 둥지가 있고, 여우에게는 굴이 있으며, 원주민에게는 오두막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명사회를 살아간다는 우리는 전체 인구의 절반도 제 집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같은 책)
말하자면 필요 이상의 가치, 사람들이 부(富)라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가치에 직찹해서 야기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사상이라고 할 만한 것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신념이라는 기초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과 사상으로 무장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소로도 월든에서 "오늘날에는 철학 교수는 있어도 철학자가 없다. 물론 삶이란 탄복을 자아내기에, 삶을 가르치는 일도 칭송할 만한 것이다. 단지 심오한 사상을 품고 있다거나 나름의 학파를 세웠다고 철학자가 되지는 않는다.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가 이끄는 대로 소박하고 독립적이고 관대하고 진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같은 책)라고 말한다. 덧붙여 "삶의 문제들을 이론으로도, 실제로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같은 책)라고도 말한다. 이른바 철학을 아는 것과 철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소로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한 사상가임에 틀림없다.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을 사랑하고 평등사회를 꿈꾸며 노예제도에 반대했다. 그리고 땅에 대한 탐욕으로 발생한 멕시코 전쟁을 비난하다가 투옥되기도 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이 소로의 사상에 동의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소로의 사상에 공감하고 최소한의 소박한 삶을 꿈꾼다면 선구적인 신념으로 이를 실천한 소로의 월든을 읽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