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신은 두고 와.
1.
구두를 샀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두를 산 건 아니지만. 사자마자 신고 온 신발은 버리고 나왔다. 처음엔 편했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발이 아파왔다. 그래도 헌 신이 그립지는 않았다. 애초에 버릴 생각을 하고 나온 신발이기도 했고, 이미 너덜너덜해졌으니까.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버릴 때가 온 걸 아니까. 비단 신발 얘기만은 아니다.
2.
설익은 잠을 자고나니 몸이 아팠다. 춥고, 서럽고, 옆에서 어르고 달래며 안아줄 누군가가 간절했다. 한참 늦은 시계를 보며 이제는 사랑이 아니게 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일어났다. 슬프고 느리고 힘겨웠다. 그래도 웃었다.
3.
이제는 그때 샀던 새 구두가 발에 딱 맞는다. 놀라울 정도로 편하고 예쁘다. 이렇게 나에게 더 잘 어울리는 신발이 있었는데 그동안 왜 그리 미련하게 익숙한 신발만 고집했을까. 미련했기 때문에 미련을 못 버렸던 거겠지. 오늘도 새 신을 신고 너를 만나러 갔다. 거리 끝에 서 있는 네가 짓는 웃음이 나에게 잘 어울려서 나도 따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