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희 Jan 26. 2016

일기

11월 21일

전부 다 믿기에는 너무 달고, 그렇다고 하나도 믿지 않기에는 견디기 힘든 말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너의 체온을 빌려 어제도 나는 따뜻하게 잠들었다.

뭐든 '적당히' 한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계량컵이 없으면 요리는 시작도 못하는 사람이라 사랑에서도 늘 뭔가를 쏟아 망치곤 한다. 언제나 너무 달아 쓰게 돼버리거나 너무 타버린 관계만 남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부터는 그냥 포기해버렸던 것 같다.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는 말을 떨구는 설탕 묻은 입술의 단향에, 못 견디고 어제도 입을 맞췄다. 마음에 담은 사랑을 다 쏟아줘야지 생각한다. 결국 돌아오는 게 없이 잔뜩 타버린 관계만 손에 쥐고 혼자 된대도 나는 괜찮다. 어차피 우리 관계에서 너는 늘 싱거운 사람이었고, 나는 늘 달다못해 쓴 사람이었으니까. 실컷 쏟아 다 줘버리고 빈 통이 되더라도 아프진 않을 수 있도록 오늘도 미리 살을 깎아 소금을 뿌린다.

나는 아마 괜찮을거야.

합리화에 대한 생각을 한다. 누군가 합리화가 유스호스텔의 더러운 담요를 끌어 덮는 것이라 말한 적 있다. 예전에는 그 더러움에 꺼림칙했지만 요즘엔 '따뜻하면 됐지'라고 생각한다. 깨끗하고 추운 밤보다는 좀 더러워도 따뜻한 밤이 좀 더 낫다고 생각해. 나는 이렇게나 달라졌다.

작가의 이전글 흔적에 관한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