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
뉴욕의 어느 거리에 긴 머리의 여자가 바이올린을 들고 나타났다. 하늘하늘한 노란 원피스에 웨이브 진 갈색 머리를 내려뜨린 여자는 산뜻한 발걸음으로 걸어간다. 그 아름다움에 반해, 사람들은 모두 한 번쯤 뒤돌아보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잠시 길모퉁이에 서서 두리번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코너 쪽에 자리를 잡고 바이올린을 꺼낸다. 길거리 공연인가, 사람들은 생각한다. 바이올린을 꺼내 든 그녀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곡의 제목은 '세상의 모든 슬픔'.
그녀는 눈을 감고 세상의 모든 슬픔을 연주한다.
슬프게, 그리고 아름답게.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남자의 애절함과,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된 아들의 허망함과, 동생을 잃은 언니의 아픔과, 엄마를 여읜 아이의 그리움을 연주한다. 사람들이 멈춰 선다. 그녀의 곡을 듣고 가던 걸음을 붙잡기 시작한다. 멈춰 선 그곳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며. 잠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온통 고요한 흐느낌과 슬픈 선율만이 거리를 메운다. 차들조차 지나가지 않는 거리에서 그렇게 슬픔이 흐른다.
곡이 중간쯤 연주되던 순간, 한 남자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고 소리친다. "그만해!" 그리곤 손에 든 총으로 그녀를 쏜다. 세상의 모든 슬픔이 연주되던 그곳에 한줄기 총성이 하늘을 찢으며 울려 퍼졌다. 그리고 노래가 멈췄다.
"감사합니다."
정말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띠고 그녀가 쓰러지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옅은 미소와 함께, 잠시 멈췄던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