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버멕틴

서민의 기생충콘서트

by 김태완

누구나 흙 냄새를 맡아 봤을거다. 흙 냄새가 구수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는 농담이 있지만 흙냄새의 주원인은 방선균 때문이다. 방선균은 세균과 곰팡이의 중간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토양에 무척 흔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그 중 가장 점유율이 높은 것은 Streptpmyces 종으로 95%를 차지한다. 흙 속에서 서로 경쟁하는 온갖 균들은 항생물질을 생산하기도 하는데 Streptpmyces 종은 다양한 길항(拮抗)물질을 만들어 토양 미생물 군락을 조절한다. 방선균에서 나오는 항생물질 중 유명한 것이 스트렙토마이신이고 결핵에 특효약이다. 클로람페니콜과 테트라사이클린이라는 항생제도 방선균에서 추출되었다. 스트렙토마이신은 머크사에서 대량생산되었고 그 발명자인 셀먼 왁스만은 1952년 노벨상을 받았다. 1950년대에 방선균으로부터 항생제를 만드는 일이 완료된 후에 오무라는 방선균에 아직 찾지 못한 항생물질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일본 전역 2500 곳의 흙을 조사하다가 드디어 하나를 찾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세균은 항생제를 만나면 놀라운 증식력과 돌연변이 때문에 내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수명이 긴 기생충은 이런 돌연변이를 겪을 시간이 없어 기생충약에 속수무책으로 죽는다. 수십년 전에 개발된 기생충약이 여전히 효과가 있는 것이다.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굳이 새로운 기생충약을 만들어봐야 돈벌이가 안 된다. 오무라는 새로운 기생충약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제약회사를 두드렸지만 번번이 거절당한 후 드디어 머크사와 제휴하게 되었다. 머크사의 담당자는 윌리엄 캠벨이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약이 바로 아이버멕틴 (ivermectin)이었다. 아이버멕틴은 기생충의 전해질 농도를 조절하는 이온통로 중 염소 통로에 관여해 기생충을 죽였다.


아이버멕틴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기존 약제보다 기생충에 더 잘 듣는다는 것은 확인됐지만 사람에게 쓰기에는 문제가 복잡했다. 인체 기생충에 잘 듣는 약이 이미 있는데다가 사람에게 쓰려면 여러 차례의 임상실험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머크사는 동물 기생충약 시장에 주목했다. 1981년에 출시된 아이버멕틴은 이내 축산업계를 평정했다. 특히 기존 약제에 잘 듣지 않던 온코서카 서비칼리스라는 기생충을 죽이는데 탁월했다. 사상충(絲狀蟲)은 말 그대로 실처럼 생긴 기생충인데 개나 말 등 가축에게 유행하는 기생충이다. 그런데 사하라 사막 남부에 유행하는 회선사상충은 인체에 감염되어 실명을 유발하는 악명 높은 기생충이었다. 사람에게 아이버멕틴을 투약해 보니 유충을 죽이는데 탁월했다. 2년마다 투약하면 실명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1995년 아프리카 회선 사상충 박멸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머크사가 통크게 무상으로 아이버멕틴을 제공했고 내전 중이던 시에라리온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에서는 회선사상충이 박멸되었다. 2015년 오무라와 캠벨은 노벨상을 수상했다. 애초에 회선사상충을 박멸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열심히 하다보니 좋은 결과가 나온 사례이다.


<서민의 기생충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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