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맞은 내 인생, 개똥처럼 흔적은 남네

나도 개똥이 거기에 있는지 몰랐어요...

by 잉여인간

1.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8)


대학을 졸업한 지 4년 만에 다시 시작한 학교 생활,

이번에는 경영대학원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는 것에 나름 만족은 했지만

회사 생활로 지친 마음에 숨 쉴 공간을 주기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으로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여기서 작은 것이라도 하나 이뤄서 졸업할 수 있을까

졸업해서 나의 경력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까에 대한 걱정이 약간은 무겁게 다가왔다.

회사 지원으로 대학원을 진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데

졸업해서 이 비용을 어떻게, 얼마 만에 회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작 단계에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앞날에 대한 불안과 금전에 대한 걱정이 앞서더라도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약간이라도 컸기 때문이었다.


경영대학원이어서 그런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최소 몇 년간의 직장 생활의 경험이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진학한, 각자의 성격과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 사이에서

과연 잘 지낼 수 있을지, 처음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마치 대학 새내기처럼 고민도 했었지만

나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바뀐 것인지 몰라도

같이 입학한 동기들과 어울려 지내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학원의 인간관계는 학부때와는 성격이 달랐다.

다 같이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그 속에는 서로에 대한 견제와 비교,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그룹화, 거기에 나이에 따른 위계까지 섞이니

대학원이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 속성은 회사원들의 커다란 모임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다시 학교로 돌아와 학생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에 커다란 동질감을 느끼며

서로 간의 탐색 기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도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암묵적인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다.

학부 때 전공과 같은 전공이어서 그런지 수업 내용을 따라가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는데

오히려 회사 업무를 하면서 학부 수업 내용을 이해하게 되어서였는지 수업에 집중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대학원에서는 전공 공부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시간을 많이 보냈다.

군대 이후로 이질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에 대해 얘기를 들을 수 있었고

통제가 거의 없는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수업이 끝나면 학교 밖으로 나가 여러 술자리에 참석했다.

하지만 등비빌 언덕이 있으면 간절함이 줄어드는 것일까

회사를 그만두고 진학한 동기들 중 졸업 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하는 이들도 많았는데

뭐 졸업쯤에 다른 곳을 알아보고 안되면 다시 회사로 복직해야지라는 생각이

몸과 마음의 긴장의 끈을 풀어버리기 시작했다.

첫 일 년을 공부보다는 노는데 시간을 보내다 보니 통잔 잔고의 압박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대학원 다니는 동안 수입 없이 회사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생활해야 하는데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돈을 썼을까...

그렇다고 아예 수입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공모전이나 기타 여러 소소한 일들을 하며 조금씩 벌긴 했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돈이었다.

치료 중에 금전치료가 무섭다더니

정말 그 당시 내 생활을 치료해 준 것은 금전치료였다고 생각한다.


2학년이 되자 졸업 후에 대한 걱정이 슬슬 들면서

졸업 전에 뭐라도 하나 해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엇을 할지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회사 다니면서 미국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포기한 것이 생각나

이거라도 하나 해놓자라는 생각으로 졸업 전까지 최종 합격을 목표로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수업을 제외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연구실이라 불리는 공부방에서

시험 교재와 씨름하며, 시험을 보기 위해 날짜와 장소를 선택하고,

시험 보러 가기 위한 여러 제반 사항을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여름을 지나 가을의 끝자락에 있었다.

태어나 처음 밟아본 미국땅에서 열흘간 관광은커녕 시험 준비하고 시험 보느라 밤낮없이 지내다 보니

마지막 과목을 끝내고 이틀 후 오전 비행기로 귀국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기왕 미국땅 밟은 김에 귀국하기 전 하루 정도는 주변을 다니며 관광을 해보자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시험을 다 치르고 나니 몸과 마음의 피로와 시험 결과에 대한 걱정이 앞서서

반나절 정도 숙소 주변의 동네를 돌아다니며 산책하다 먹을 것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잠만 잤다.

그렇게 시험을 보고 귀국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인터넷을 통해 4과목 시험 중에 세 과목에 합격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시험 준비에 보낸 것도 아니었는데 세 과목에 합격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머지 한 과목의 재시험을 위해 다시 출국해야 한다는 것에 금전적 부담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른다는 말처럼

마지막 기말고사를 앞둔 12월의 어느 날 우연치 않은 소식을 듣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