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개똥이 거기에 있는지 몰랐어요...
마지막 기말고사를 앞둔 12월 초, 이제 다시 회사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회사를 휴직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터라
아직 외부에서 회사 네트워크로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은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동기들이나 친분이 있던 분들과 1년에 두세 번 정도 만나
서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회사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는데
공식적인 정보를 얻어보고자 거의 반년만에 회사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여기저기 게시물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 눈에 띈 한 가지 공지,
12월 중으로 희망퇴직 신청자를 받아 심사 후 12월 말에 퇴직을 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시행하는 희망퇴직이어서 인지 퇴직 조건도 괜찮은 편이었다.
공지를 보고 나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2월 말까지 퇴직기간이었지만 따로 들은 소식으로는 1월에 다시 복직했으면 한다는 얘기가 있어서
졸업 후 구직활동 할 필요 없이 바로 사무실로 가서 인수인계를 받고 일을 시작하면 되었다.
하지만 대학원 재학동안 벌이가 없이 쓰기만 하고, 시험 보기 위해 미국을 다녀온 터라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은 없이 오히려 빚만 늘어나 있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 월급을 받으며 천천히 빚을 갚아나갈 것인지,
아니면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퇴직금과 퇴직 패키지를 받아 빚을 갚고 재취업을 할 것인지
기말고사를 준비하며 며칠간 잠을 못 자고 뒤척이며 계속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여기서 어떠한 선택을 하던지 분명 후회는 남을 텐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후회를 덜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자 졸업하고 1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어쨌든 간에 회사 입사했을 때보다 졸업 후 몇 가지 조건을 더 갖췄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재취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도 품게 되었다.
만약, 내년도 상반기 중으로 재취업에 성공한다면 대학원 생활이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가 되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덮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래 아직은 젊고, 4년간의 경력이 있고, MBA 학위와 미국공인회계사라는 자격을 갖출 테니
경력직 취업 시장에 나가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될 거야...
결정을 하고 바로 회사에 연락을 해 희망퇴직에 대해 문의하고, 신청서를 작성하여 보냈다.
신청서를 보내고 며칠 뒤 회사 측에서 희망퇴직 신청이 받아들여졌다는 연락을 받고
그 후 절차에 대한 안내를 메일을 통해 받았다.
결국 나의 첫 회사 생활은 희망퇴직으로 마무리하게 되었지만,
당장의 금전적 상태를 무시할 수 없었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 덤덤히 회사에서 요청하는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함박눈이 내리는 12월 말일,
마지막 기말고사를 끝내고 학교 생활을 정리하는 중에 회사를 방문했다.
희망퇴직 마지막 절차로 담당 임원의 서명을 받고, 사원증을 반납해야 했기 때문에
펑펑 쏟아지는 눈을 뚫고 회사로 도착하여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미 희망퇴직에 대한 소식이 알려져서 인지 오래간만에 사무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희망퇴직이 되어 부럽다, 돌아오면 맡게 될 업무에 대한 담당자를 새로 찾아봐야 한다,
졸업하고 뭘 할 거냐, 어디 다른 곳 갈데 있는 것 아니냐 등에 대한 얘기를 하며
담당 임원에게 퇴직서 서명을 받고, 인사부에 가서 퇴직서와 사원증을 제출했다.
퇴직자가 되어 본관을 나서는 첫걸음,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며 입사 때부터의 기억을 하나둘씩 해보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는 무엇을 이루었을까, 열심히 회사 생활을 했었을까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들, 먼저 회사를 떠난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여러 생각으로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지만, 이미 나는 퇴사라는 선택을 했고 돌이킬 수 없었다.
이제 그저 앞날만 생각하며 살아가야 했다.
당장 미국공인회계사 시험 한 과목을 다시 보기 위해 준비해야 했고,
2년 동안 지냈던 기숙사도 비워줘야 했기 때문에 계속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갈 수는 없었다.
퇴직 후 바로 새해를 맞으며, 정들었던 기숙사 방을 정리하기 위해 학교로 향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떠난 캠퍼스는 눈 내린 겨울의 경치를 조용히 드러내고 있었지만,
칼바람의 시린 느낌은 두꺼운 외투도 막지는 못했다.
기숙사 방에 가서 짐을 정리하고, 아직 학교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대학원 생활을 소회 할 시간도 없이 집으로 와 다음 달에 있을 재시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각자 있던 곳으로 돌아갔어도 연락은 계속하며 지냈기 때문에
대학원 생활을 추억하는 것은 시험 보고 나서 사람들을 만나 같이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우선 시험공부에 매진했다.
지난번 첫 시험에서 무엇이 부족해 떨어졌는지를 알기 때문에 재시험 공부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한 달 정도의 시험 준비 기간을 보내고 다시 시험을 보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해서 하루 정도 교재를 천천히 살펴보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다시 생각한 뒤
다음날 오전에 시험을 보고, 이틀정도 렌터카를 빌려 관광을 하며 재시험 일정을 마쳤다.
시험장을 나서며 이번에는 통과했다는 생각은 한 달 뒤 현실이 되었고,
회계사 자격증을 발급받기 위해 여러 서류를 준비하고 제출하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 외에 시험을 보고 나서 세 달간은 간간히 경력직 채용 공고를 보며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력서를 제출한 것은 경력직 채용 시장에서 내가 가진 조건이 어디까지 통할 지 확인하고 싶어서였고,
사실 그때도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며 천천히 찾아보고 싶었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퇴직 시 받은 퇴직금과 패키지 덕분이었으리라...
대학원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인지
먼저 재취업한 대학원 동기들과 자주 만나서 다시 시작한 회사 생활에 대한 얘기를 듣고,
결국 본인이 희망하는 분야로 진출하는 것보다 경력에 따라 재취업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명확하게 결정한 것도 없고,
지난 회사의 경력과 학위, 시험 합격이라는 조건이 있으니
기존 담당했던 업무와 유사한 분야로 헤드헌팅 연락은 매일같이 오고 있는 상황에서
세 달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니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어디로 갈지 정해서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본격적으로 재취업 준비를 하며,
입사 조건을 제시하는 여러 회사들 중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회사에 면접을 보고
한 달 뒤 최종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 여름의 무더위도 꺾여가는 8월 중순,
이제 사회생활의 2막을 시작하기 위해 집을 나서 회사로 발걸음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