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맞은 내 인생, 개똥처럼 흔적은 남네

나도 개똥이 거기에 있는지 몰랐어요...

by 잉여인간

1.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10)


학업으로 인한 휴직으로 회사 업무를 손에 놓은 지 2년 반,

그동안 대학원 학업과 자격증 공부, 퇴직과 구직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새로운 회사에서 업무를 시작하려 하니 기대와 걱정이 반반 앞섰다.

새롭게 입사한 회사는 대기업 중 한 곳에서 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조성한 사업장으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출퇴근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담당하게 될 업무는 첫 회사에서 담당했던 업무와 유사한 것이었지만,

업무 체계와 전산 시스템 등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숙지해야 할 것들이 첫 회사와 다르다 보니

경력직임에도 입사하고 한동안은 업무 관련 교육을 받고,

여러 부서를 다니며 새롭게 입사한 사람이라 소개하며 인사를 다녔다.

새롭게 조성된 사업장이어서 그런지 시설은 최신식으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아직 여기저기서 필요한 사람들을 구하는 중이라 여기저기 빈 공간들이 많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하는 것보다 겪어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더 힘들 수 있다는 말처럼

한동안 회사 생활을 떠나 있다 다시 회사 생활을, 그것도 첫 회사와 모든 것이 다른 회사에서 시작하려니

적응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게다가 아직 업무 체계가 완전히 자리 잡혀 있는 상황이 아니라

부서의 거의 모든 실무는 아래 직급의 직원이 담당하고 있어

입사하고 몇 주간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자리만 차지하고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직 부서 업무도 완전히 익힌 것도 아니고 하나씩 배워가는 상태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를 벗어나고자 작은 업무라도 하나씩 넘겨달라는 나의 부탁에

마치 내 심정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부장님과 동료 직원들은

경력직이라도 아직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니

나중에 실수 없이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마음 편하게 학습하는 기간을 보내라 얘기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얘기였을지 몰라도

경력직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곳에서 당장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내 입장에서는 고맙게 느껴졌다.

그래,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 회사에서 적어도 일 인분은 할 수 있게

하나씩 성장하는 시간을 보내는 거라고 생각하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매일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불편하다고 느껴졌던 것이

조금은, 아니 그래도 꽤 괜찮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신입 때처럼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자료를 보고,

회사 시스템에 들어가 활용법을 익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옆 자리의 도움 요청과 부장님의 업무 지시가 들어오기도 해서

이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를 면하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에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하루 일과 중 배우는 시간에서 업무를 진행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칭찬도 받고, 지적도 받는 순간이 늘어가며, 나도 이 회사의 일원으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점심시간에는 부서 사람들과 구내식당으로 가서 그날의 메뉴 중 무엇을 먹을지 얘기하고

같이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시간도 보내면서

조금씩 첫 회사에서 보냈던 순간들을 이 회사에서 보내는 순간들이 덮고 있었다.

그렇게 새롭게 시작한 회사 생활이 안착했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의외로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조금씩 커져갔다.

당시 부서원들의 구성은 부장님과 나를 포함한 실무자들이 5명 있었는데

직급상 내가 부장님과 동료 직원들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첫 회사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새롭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히 해보고자

부장님과 대화도 많이 해보려, 동료 직원들과도 편하게 지내보려 나름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업무에서 부장님의 지적 사항이 발생할 때 옆 자리에 있는 직원을 불러 나무라는 모습을 보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상당히 불편했었다.

물론 그것보다 더 심하게 나무라는 상사가 있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겠지만,

당시 내 기준에서는 그러한 상황이 어떨 때는 견딜 수 없이 지나가는 때도 있어

부장님과 잠깐 휴식시간을 보낼 때 업무로 지적하실 일이 있으시면 나도 같이 불러주시라 말씀도 드려보고

동료 직원에게는 부장님도 잘해보자고 본인 방식으로 격려하시는 것이니 괘념치 말라고 얘기도 해보았다.

하지만 또다시 옆 자리 동료 직원을 불러 심하게 나무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 상황을 넘기기만 하는 나 자신도 조금씩 무기력 해져갔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먼저 물어보고 둘 사이에 중재 역할을 했어야 하는데...


그러다 어느 날인가

회의실로 부장님이 부서원들을 모두 불러서 본인이 생각하는 불만을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부서의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 부서원들의 업무 성과나 태도가 본인 기준에 못 미쳐서 그랬으리라...

일단 나도 아직 온전한 일 인분을 하고 있지 못하니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원들도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저분이 왜 저러실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표정으로 묵묵히 듣고 있었다.

일 분, 십 분, 한 시간.....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잘한 게 없지라는 생각에서

조금씩 대체 부서원들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긴 시간 동안 본인의 불만을 얘기할까,

얘기하면서 저렇게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옮겨가기 시작해

그 시간이 끝나갈 무렵 충동적으로 여기 더 이상 못 다니겠다는 생각으로 번져가고 있었고

부서원들이 모두 나가고 난 뒤 부장님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지금도 가끔 그 순간이 떠오른다.

대체 무엇에 홀려 그만둔다는 말을 했을까,

그보다 더 심한 상황에서도 웃으며 참고 견디는 사람들도 많은데

대체 나는 왜 그리 충동적으로, 뒷생각도 하지 않고 불쑥 그만둔다고 얘기했을까...

한동안 회사 생활을 하지 않아 그러한 상황을 견디는 마음의 근육이 무뎌져서라고

나 자신에게 당시의 나를 겨우겨우 변호해 보지만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말처럼 퇴사 처리를 밟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고

부장님께 최단기 퇴사 직원이라는 기록을 안겨드리며

새롭게 시작한 지 3개월 남짓 지난 시점에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충동적이고 참을성이 부족했던 10여 년 전의 나는

자기 팔자 자기가 꼬아버린다는 얘기처럼 인생이라는 기다란 실타래를 중간에서 꼬아버렸고

꼬아버린 실타래는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채 단단히 굳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