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개똥이 거기에 있는지 몰랐어요...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회사를 퇴사한 후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집밖으로 나가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퇴사했다고 가족들에게는 차마 얘기를 하지 못한 채
출근 시간에 맞춰 집을 나갔다 퇴근 시간, 가끔 조금 더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하루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까.....
충동적으로 회사를 퇴사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머릿속은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 복잡했다.
무거운 마음과 복잡한 머리를 가지고 무작정 집을 나와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여기저기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집 근처 도서관에 노트북을 들고 가서 인터넷만 하다 집에 가던가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 가서 바로 출발하는 기차나 버스표를 끊어 무작정 타고 가던가
차를 끌고 나와 도로가 이끄는 대로 목적지 없이 운전하던가
아니면 여러 취업 사이트를 보며 어디 채용하는 곳은 없는지 찾아보던가.....
여름의 문턱을 한참 넘어 완연한 가을빛을 보이는 계절이었지만
내 마음에는 한겨울의 시린 바람이 유리 조각처럼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 자책하는 마음으로 돌아오는 일상이 계속되다 보니
누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도, 혼자서 이 시간을 만끽하는 것도
내게는 모든 것이 금지된, 아니 스스로 금지시켜 버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만나자는 연락에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다 보니
하나둘씩 멀어져 버린 사람들도 생겨났고
가족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얘기하지 않았지만
점점 표정에 그늘이 생기고 말 수가 없어지는 모습을 보며
저 녀석이 왜 저럴까에서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걸까라는 걱정으로 바라보는 것을
내색하지 않았어도 가족들의 눈빛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는 괜찮아... 그저 일이 피곤할 뿐이야...
그렇게 가끔 얘기를 했지만 아마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보낸 시간은 가을을 넘어 겨울로 향했고
겨울도 지나 다음 해 봄의 입구까지 흘러갔다.
두 계절을 흘려보내고 새로운 계절을 맞을 때까지 내 상황은 달라진 게 없었다.
스스로 꼬아버린 인생에 대해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그래도 정신줄은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보냈을 뿐이었다.
하지만 겨울의 끝무렵에 다 다르니
이제 더 이상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사람이 무너지고 망가지는 것은 한순간이기 때문에
이대로 계속 시간을 보내면 나도 나 자신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으면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우선 무슨 일이든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내 찾지 않았던 취업 사이트에 들어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수정하고
채용 공고를 보며 일단 여기저기 입사지원서를 제출, 아니 던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무슨 일을 잘하는지 찾는 것은 그 당시에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우선은 당장 일을 시작할 곳이 필요했었다.
입시지원서를 던지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어느 작은 컨설팅 회사에서 취업 사이트에 올려놓은 이력서를 보고 연락을 주었다.
현재 상황에 대해 물어보고 컨설팅 일에 관심이 있다면 면접을 보러 오라는 얘기를 듣고
바로 그 주에 면접을 보러 사무실로 가겠노라 하며 이제 일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회사 규모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 스스로 꼬아버린 일상을 이제 조금이나마 풀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무슨 분야의 컨설팅을 하는지 어떠한 프로젝트를 했는지 찾아보고
면접에서 나올 만한 이런저런 질문들을 예상해 보고 그에 대한 답변도 생각하며
면접 전날까지 끊임없이 준비했다.
면접 당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을 나서 사무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어떻게 오셨냐는 직원의 말에 대표님과 면접을 보기로 했다는 말을 건네고 대표님 방으로 들어갔다.
반갑게 맞이하는 대표님의 모습을 보며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고
일반적인 면접과는 조금 다르게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면접을 한 시간 정도 진행하고 나니
입사하게 되면 같이 일하게 되는 팀장과 이틀 후에 면접을 보자는 얘기를 들었다.
팀장과는 실무 면접이 진행되기 때문에 대표님 면접과는 다르게 그동안 했던 일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입사하게 되면 수행할 컨설팅 업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으로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대표님 면접을 본 지 이틀 후 다시 사무실로 찾아가 팀장 면접을 보았고
팀장 질문에 완벽한 대답은 아니었어도 나름 준비한 내용을 열심히 얘기하니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있었다.
면접이 끝나고 최종 결정 후 하루나 이틀 뒤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듣고 다시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나름 면접은 잘 본 것 같은데 결과가 안 좋으면 어떻게 하지,
이제 또 어느 회사에 지원해야 하나....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밤잠을 설치고 다음날을 맞이했다.
아마 기억이 맞다면 오전에 연락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전화기 너머 같이 일해보자는 얘기와 입사 시 필요한 서류를 메일로 보냈다는 안내를 듣고
이제 이 지긋지긋한 무의미한 일상을 보내는 것도 끝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도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구나
다시 이러한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며 입사 준비를 시작했다.
연락을 받은 그날 저녁
가족들에게 저녁식사를 사면서 컨설팅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고
작은 회사지만 가서 열심히 일해보겠노라고 얘기를 했다.
저녁식사 후 가족들을 먼저 집으로 보내고 잠깐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며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온 것처럼 시리기만 했던 내 일상도 이제 사람들과 어울리며 따뜻해지겠구나
그동안 무의미하게 보냈던 시간은 잊고 다시 출발하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시간을 잠시나마 가졌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현관밖으로 오랜만에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