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맞은 내 인생, 개똥처럼 흔적은 남네

나도 개똥이 거기에 있는지 몰랐어요...

by 잉여인간

1.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7)


아직 해도 뜨지 않는 시간인 6시,

연수원의 기상 시간에는 졸린 눈을 겨우 뜨며 운동장에 모여 있는 90여 명의 신입사원들이

각 반별로 모여 1월의 추운 바람을 맞으며 아침 조회를 하기 위해 서있었다.

연수를 담당하는 선배 직원이 지난밤에 이상 유무 발생을 확인하고

그날 있을 교육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뒤

아침 운동으로 체조를 하고 연수원 운동장을 몇 바퀴를 뛰었다.

아침 운동 후에는 식사를 하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 정비를 한 뒤

교실에 모여 오후까지 연수 교육을 듣고 오후에는 자유 시간을 가지는 일정이 2주간 지속되었다.

같이 입사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나하고 어떻게 연결되는 지점이 있나의 약간의 탐색 기간이 지나고

2주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는 입사 동기라는 공통분모하에 친근함이 첫날보다 커지긴 했지만

암묵적으로 조금 더 친근한 사람들, 같은 업무분야의 사람들끼리 그룹이 형성되어 있었다.

2주간의 연수원 교육 후 며칠의 휴가를 보내고 난 뒤

지방에 있는 공장에서 현장체험 식의 교육이 진행되었다.

인원을 반으로 나눠 한 주씩 주야간 업무를 체험하는 교육이 2주간 진행되었는데

공정별로 인원을 몇 명씩 나누어 실제로 제품을 생산하는 일을 현장 직원들의 도움하에 해보는 교육이었다.

신입사원 전부가 사무직이어서 인지 생산 라인에서 일을 하는 것에 생소하지만

자신들이 다닐 회사의 제품이 공정에 따라 생산되고 완제품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지만

라인에서 근무하는 생산직 직원들은

그들의 본업에 신입사원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며 지도하는 업무가 추가되어서 인지

신입사원들이 왔다는 반가움도 있었지만 약간의 피곤함도 보였다.

업무시간이 끝난 후에는 공장 인근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거나

여느 회사원들처럼 몇몇 무리를 지어 근처 식당이나 술집으로 가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지금 같이 교육을 받는 신입사원 중에 몇 년이 지나면 얼마나 남아 있을까,

나는 계속 이 회사를 다니고 있을지 아니면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을지, 어떠한 일을 하고 있을지

가슴 한편에는 의문이 들었지만 아직 입사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냥 속으로만 가끔 생각하고 겉으로는 오랫동안 이 회사에 다닐 것처럼 대화를 나누었다.


연수원 교육과 생산 라인 체험 교육의 한 달간 연수가 끝나고 본사에서 신입사원 입사식이 진행되었다.

사장 이하 각 본부의 본부장과 임원들, 신입사원들과 각자의 부모님들이 참석한 입사식에서

인사말과 회사소개, 전시장에 있는 제품들의 견학이 끝나고 부모님과 함께 사장과의 기념촬영이 진행되었다.

원하는 회사는 아니었어도 대기업에 입사한 아들이 연수가 끝나고 어엿한 신입사원이 되었다는 것에

사진에 나온 부모님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아 보이셨다.

이 녀석도 이제 다 커서 누구나 알만한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생기셔서 그랬을까

조심스럽지만 꼼꼼히 회사 배지를 달아주시는 손길에서 힘이 느껴졌다.

입사식을 마치고 일하게 될 부서로 가 부서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첫날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담당 업무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었다.

신입사원 연수가 교양과목이었다면, 부서별 교육은 전공과목으로

앞으로 내가 담당할 업무를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 놓치지 말고 하나하나 꼼꼼히 들어야 했다.

업무 프로세스와 시스템 사용법, 본부의 각 부서별 담당업무와 우리 부서와의 연관 업무 등

일주일간의 교육이 끝난 후 실제 업무에 투입되어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적어도 일 인분의 몫을 하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작은 일부터 시작하였다.

처음 몇 달간은 담당 업무를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어느 정도 손에 익숙해질 때쯤 내가 하는 이 업무가 나한테 맞는 업무인지, 회사의 문화가 나하고 맞는지

조금씩 의문이 슬슬 싹을 틔우기 시작해서 일 년 정도 지나자 여름날 대나무처럼 자라기 시작했다.

특히 일 년이 지나고 몇몇 동기들이 다른 회사로 옮겨가는 것을 보고 있으니

나도 조금 더 조건이 좋은 회사로 옮겨볼까라는 생각이 눈덩이 굴러가는 것처럼 커지기 시작해

몰래 다른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넣고 아프다는 핑계로 반나절 또는 하루 휴가를 받아 면접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옮겨볼까라는 생각만 있었지, 왜 그 회사에서 지원한 업무를 하고 싶었는지 명확하지 않아서

지원한 곳 어느 한 군데에서도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오히려 그러한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어떤 생각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

다른 부서원들은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고, 연말에 업무 재조정이라는 명목으로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지금도 첫 근무한 부서의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되면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먼저 앞선다.

당시 내가 담당한 업무와 같이 일한 사람들이 나와 맞지 않았다고 위로를 해주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긋난 생각으로 그렇게 행동을 한 것에는 면죄부가 되지 않았다.


새로 옮긴 부서는 첫 부서와 업무 연관성이 큰 부서였지만

담당 업무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첫 업무를 배울 때처럼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부서의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는 것이다.

물론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런 나를 이해해 주며 보듬어 준 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서를 옮기고 나서 3년의 시간을 보냈다.

일도 많고, 야근도 많고, 여기저기 자료를 요청하는 곳도 많고...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첫 부서에서 했던 것보다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업무와 부서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것과 반비례해서 다른 회사로 옮겨볼까라는 생각은 작아져 갔고,

점점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부서를 옮기고 2년의 시간 동안 사람들도 일부 바뀌고, 담당 업무도 약간 조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조금씩 자라나는 다른 생각을 잘 억눌러가며 매일 출퇴근을 했었다.

2년이 지난 후 대리 승진 대상 목록에 올랐다.

마음속으로는 조금 기대를 했지만, 이내 같이 대상 목록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기대를 접었다.

반년 먼저 입사한 선배들과 입사 처음부터 부서에서 일한 동기들이 아무래도 승진하겠지...

그들이 보여준 성과도 괜찮았고 성실히 회사를 다녔으니 이번에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진자 발표가 나온 날, 당시 본부장님이 회의실로 조용히 불러 이번에는 안되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셨다.

이미 안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본부장님께 이래저래 해서 안될 것 같았다고 생각했다고

다음번에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고 회의실을 나오니 여러 사람들이 한 마디씩 위로를 하기 시작했다.

뭐 이번에는 안될 것 같았다고, 난 괜찮으니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다.

모든 대상자가 승진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나 역시도 여러 상황이 승진에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도 달라지는 것 없이 출근해서 내가 담당하는 업무를 하고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될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일 년의 시간이 지나갈 무렵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여름이 지나고 나서부터 조금씩 회사에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잠시라도 일을 쉬고 싶었다.

불안한 회사의 미래와 담당 업무에 대한 매너리즘, 부서장의 교체,

원했던 업무를 타 부서에서 오시는 분이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발생하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때쯤에는

뜨거운 열기에 다 타버린 나무처럼 마음에 감정의 재만 켜켜이 쌓여갔다.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출퇴근하다 우연히 경영대학원의 신입생 모집 공지를 보게 되고

그래 저기로 가서 일단 이 상황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옆자리에 있는 차장님께 몰래 추천서를 부탁해서 입학 원서를 제출하고 서류 심사 통과 후 면접을 본 후

한 달여의 시간을 보낸 뒤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런데 합격 통지를 받고 바로 본부 간의 인사이동에서 나도 대상자에 포함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쪽에서 필요한 인원을 나를 보내고 받는 식의 이동이었는데 얘기를 듣고 나니 허탈한 마음만 가득했다.

그리고 여기서 보낸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내가 보였던 모습이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물론 그것은 나의 탓이지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본부 이동에 대한 본부장님의 면담에서 경영대학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달드렸다.

놀라시며 축하한다고 얘기를 하셨지만,

다시 본부 간 이동 인원 선정에 대한 고민이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셨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학원 진학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당시에는 그저 도망쳐서 숨 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면담이 끝나갈 무렵 무엇을 원하냐는 본부장님의 말에 대학원 다니는 동안 휴직을 원한다고 답했고,

합격증서를 본인에게 전달하면 부사장께 보고 드려 조치를 취하겠다는 답을 들은 뒤 면담을 마쳤다.

그렇게 교육 휴직이 결정되니 이미 나에 대한 소문이 같은 층의 사무실에 돌기 시작했다.

뭐 어쩌겠는가. 이미 입학하기로 결정된 것 그냥 아무렇지 않게 휴직 전까지 업무를 처리하고

새로 내 업무를 담당하게 될 직원에게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 출근날,

같은 층 사무실 사람들에게 다시 공부하러 간다고 인사를 하고 퇴근 후 부서 사람들과 송별 회식을 한 뒤

공식적으로 휴직 기간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