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맞은 내 인생, 개똥처럼 흔적은 남네

나도 개똥이 거기에 있는지 몰랐어요...

by 잉여인간

1.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6)


제대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나

다시 학교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비슷한 시기에 제대한, 지금도 가장 가까이 지내는 두 친구 중

한 명은 다시 수능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복학을 미뤘고

다른 한 명은 바로 가을학기에 복학을 했다.

다시 수능을 준비해서 볼 엄두가 나지도 않았고,

수능을 다시 본다고 해서 딱히 무엇을 전공할지 정해지지도 않았던 나는

우선 복학하는 친구를 따라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군대에 있을 때도 휴가나 외박 시 아주 가끔 찾아갔었지만

이제 복학생으로 돌아간 학교는 겉모습도, 사람들도, 분위기도

그리고 나 역시도 2년 전과 많이 바뀌어 있었다.

동아리 방에 찾아가 보니 낯익은 얼굴들 보다는 낯선 얼굴들이 많았고,

그들보다는 학번은 높았지만 떠났다 다시 돌아온 내 입장에서는

처음 동아리 방에 들어간 첫날과 같이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해야만 했다.

과연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 무슨 수업을 들어야 하나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친구들이 많은데 이번 가을학기를 잘 다닐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과 원래도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였는데 2년여의 시간 동안 조금 더 굳어버린 머리로

수업을 따라가 보려 하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수업과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학교에 다니는 목적이 무엇인지, 졸업하기 전까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제 막 복학했으니 적응하면서 신중하고 천천히 찾아보고 결정하는 것도 좋았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적응하는 것에만 집중해서 그저 그렇게 한 학기를 보냈다는 것이다.

복학해서 첫 학기가 중요하다는 선배들의 말이 어떠한 의미였는지 그때 깨달았다면 좋았으려 만

깨달음과 이해가 느렸던 나는 그저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들어가고 과제를 내고 시험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기에 바빴다.

그렇게 복학 첫 학기는 허무할 정도로 잔잔히 흘러 지나갔고

지금도 어떻게 보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겨울 방학을 맞이했다.


12월의 잿빛 하늘과 같은 복학 첫 학기와 겨울 방학이 지나

다시 찾아온 봄의 학교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늘어났고

화창한 날씨처럼 실패한 복학 첫 학기를 거울삼아 달라진 학교 생활을 하고 싶었다.

한 다리 건너 만난 동기들과도 어느덧 친구가 되어 있었고

지난 학기에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수업을 따라가다 보니

머리가 조금은 풀려서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게 조금 수월해졌다.

물론 낯익은 얼굴들이 늘어나 내용을 물어볼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크게 작용했지만...

그리고 새로운 학기가 좋았던 점은

새롭게 만난 사람들에게서 그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들으며

조금씩 자극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거나 졸업 후 진출하고 싶은 분야를 정한 친구들을 보며

나 역시 뒤처지지 않게 무엇인가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뿐인 다짐과 부족한 끈기는 다시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았고

그렇게 간 보고 포기하는 일상이 계속 이어질수록 불안감과 무기력함은 커져갔다.


그렇다고 해서 복학 후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름 학업 성적도 괜찮아서 장학금도 받아봤고,

대기업에서 인턴 생활도 두 번 해보고,

논문 공모전에 두 번이나 입상도 하고,

토익 시험에서 괜찮은 성적도 받아보았고,

그 외에도 뭐 이런저런 나쁘지 않은 성과들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것들을 묶어 앞으로 어떤 분야로 나아갈지 정해야 했는데

그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마치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완료되면 체크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처리했다는 것이다.

하나하나 성과를 얻을 때는 성취감이 컸지만,

막상 졸업 때가 가까워질수록 이 문제는 점점 크게 체감되었다.

4학년이 되자 나 역시도 여러 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뿌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목적 없이 뿌린 것은 아니었다.

제조업, 대기업, 기획업무...

이를 중심으로 열심히 입사 지원서를 작성해서 뿌렸고, 몇몇 곳에 합격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가고 싶었던 곳은 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합격한 곳들은 회사 크기나 업무가 내 성에 차지 않았다.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기에는 전공과목을 공부하다 보니 내 수준에서 멀어 보였고

다른 분야에 지원해 보아도 왜 지원했는지 무엇을 준비했는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아 합격은 요원해 보였다.

마지막 기말고사를 마친 후 합격한 회사들 중

어디에서 신입사원을 시작해야 할지 정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지만

정말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해서였는지 선택에 있어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었다.

뭐 일단 입사하고 다시 기회를 노려봐야겠다는 정말 시건방진 생각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딱히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얄팍한 성과만 들고 있던 나는

그렇게 마지막 기말고사를 끝낸 후 신입사원 교육을 받기 위해 1월의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