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개똥이 거기에 있는지 몰랐어요...
네 번째 시작하는 직장 생활,
첫 번째 직장에 그리 오래 있은 것은 아니었어도 4년 이상 다녔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직장은 경력이라 내세우기 무색할 정도로 짧게 다녔던지라
이번에는 되도록 오래, 아니 처음 시작하는 회사인 만큼
열심히 노력해서 같이 시작한 사람들과 함께 크게 키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전 회사에서 친분이 있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같이 시작했고,
맡게 된 업무도 전년도에 진행했던 연구용역을 이어서 하는 것이라
적응해야 하는 것은 사무실 환경뿐이었다.
다른 동료들보다 조금 늦게 합류했지만 이미 그들은 내가 합류할 것을 기정사실화 했고
합류하자마자 잘 왔다고, 이제 완전하게 멤버를 구성해서 시작할 수 있다고 기뻐했다.
기존 수행했던 일들을 이번 회사로 들고 왔기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각자 맡은 업무를 처리하느라 입사 환영회 이후에는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회사 창립부터 합류하는 것에 많은 위험은 있었지만
하루하루 일을 하면서 회사의 기틀이 조금씩 잡혀가고,
일을 발주한 기관 담당자들의 의심도 조금씩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몇 년 열심히 일하면 회사가 안정궤도에 올라 그만큼의 보상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생겨났다.
회사를 세우면서 기존에 했던 일들을 이쪽으로 옮겨와 한다고 하지만
당장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합류했을 때 급여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투자자로부터 몇 달간 급여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투자를 받은 상태여서
첫 달부터 급여는 정상적으로 지급되었고,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이 해소되니 일에만 몰두하면 되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회사에 합류한 지 세 달 정도 지났을 때 일이 터지고 말았다.
당시 대표와 회계 담당 직원이 매달 회사 자금에 대해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계획보다 자금이 빠지는 것이 많았고, 대금 지급이 늦어지다 보니 추가 운영자금이 필요한 상태였다.
투자자에게 정기적으로 회사 자금 상황에 대해 보고하고
투자자도 자금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했던 상황이라
추가 운영자금에 대해 대표가 얘기하려 투자자를 찾아갔는데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였다.
도대체 왜 이리 자금을 많이 쓰고 있느냐, 대체 들어오기로 한 대금은 언제 들어오는 것이냐
혹시 당신들이 나를 속이려고 하는 것은 아니냐 등의 얘기를 하며 투자금을 회수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대표는 당황하며 절대 속이는 것이 아니다, 이러이러한 부분에서 자금이 나간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연말에는 대금이 모두 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연말까지 사용할 자금만 요청드리는 것이다라고 얘기를 했지만
결국 투자자는 자금을 회수하고 회사를 정리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마음이 틀어지게 되었을까...
회계 담당 직원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래도 180도로 태도가 바뀔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연말까지 회사를 정리하게 되어 모두들 적잖이 당황했다.
지금하고 있는 일들의 마무리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가 없어지게 되니 마무리는 둘째치고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되지도 않는 욕심을 내니 이렇게 벌을 받는 것인가,
그냥 다니던 회사나 잘 다닐 걸 무슨 부귀영화를 누려보겠다고 위험을 무릅쓰고 합류했을까
급작스런 결정 이후에 며칠이 지나 당황한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을 때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때 회사를 그만두고 나갈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연말까지 직원들의 급여를 해결하기 위해
본인이 담당하는 업무를 하며 여기저기 다니는 대표의 모습과
전년도 연구용역의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믿고 맡겼다는 발주 기관의 담당자의 얘기를 들으니
적어도 내가 맡은 일은 끝까지 마무리하고 거취를 결정해야 했다.
그 당시 회사 생활했던 모습 중에 아직도 머릿속에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크리스마스 전날 사무실에서 밤새 보고서 작성을 하고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바버렛츠의 'Lonesome Christmas'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물론 집에 가족들이 있고, 같이 옆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노래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들 퇴근하고 홀로 사무실에서 보고서 작성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해 당장 다음 달의 거취도 불확실한 처지가 되다 보니
외로움과 서러움이 몰려왔으리라.
잠깐 일을 멈추고 창문밖 거리에 놓여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마음을 진정시켰던 장면은
아마 지금 이후에도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대표의 노력으로 다행히 연말까지 급여가 지급되고, 모든 일은 마무리되었지만
회사의 정리는 시작되었다.
그중에 회사를 떠난 직원도 있었지만, 대부분 대표가 다시 회사를 설립하면 합류하겠다는 의견이었다.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도 같이 하겠다는 직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지금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사무실을 마련하고자 부동산을 알아보고 있다고 며칠 시간을 달라고 했다.
투자자와의 모든 정리가 마무리되고 바로 사무실 이사를 시작했다.
정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무실을 마련하여 회사를 다시 설립하고
한 번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번 일을 교훈으로
다시는 투자를 받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이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대표의 말을 들으며
다섯 번째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회사 설립 후 몇 달간, 아니 거의 일 년간 일이 없다시피 했다.
기존에 했던 일들은 발주한 기관의 담당자가 교체되어 중단되거나 수행사가 바뀌었고
새로운 연구용역에 입찰한 것은 번번이 떨어졌다.
물론 중간중간 인연이 있었던 회사의 연구용역 일부에 참여하여 일을 했지만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자금을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대표는 어떻게든 급여를 지급하고자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자금을 끌어왔지만
수입이 없이 지출만 있었으니 고정 지출을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몇 명의 직원들도 회사를 떠나 처음에 비해 절반으로 인원이 줄었다.
매달 지출되는 비용을 줄여보고자 대표는 사무실을 작은 곳으로 옮겼고,
결국에는 향후 지급을 약속한 후 급여를 줄였다.
지금은 사이가 멀어졌지만 당시의 대표는 대단했고, 고생을 많이 했다.
본인이 직원들을 데려왔으니 본인이 어떻게든 책임지겠다는 태도는 지금의 나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바닥을 치면 다시 올라가는 것처럼 조금씩 회사로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회사를 설립할 때와 비해 규모는 줄어들었어도
그래도 일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하니 조금씩 숨통이 틔여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늘어가는 일을 하며 한 해를 또 보내고
여전히 줄어든 급여는 늘어날 기미는 안보였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것에 안도하며
반년을 또 회사에서 버티며 보낸 어느 날 기존 수행했던 연구용역의 발주기관 담당자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새로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연구용역을 발주하기 위해 전임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나를 추천했다고 본인이 추진하고자 하는 연구용역을 수행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일이 많지 않았고 기존 수행했던 연구용역에 대한 사업이어서
조금 스터디가 필요했을 뿐 수행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어 연구를 맡겠노라고 얘기를 전했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며 이 회사에서의 생활이 전환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