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개똥이 거기에 있는지 몰랐어요...
처음에는 독감처럼 일시적으로 유행하다 끝날 줄 알았다.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급속도로 퍼져나간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길어야 한 두 달이면 사그라지겠지라는 생각만 했었다.
이런 기회가 다시 올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업이어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 동안 공들여 준비했던 사업은
깨어나면 잊히는 여름날 낮잠의 꿈처럼 눈앞에서 사라져 갔고
마스크 쓰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던 나는 마치 습관인 마냥 마스크를 쓰고
하릴없이 그저 사무실로 나가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비단 그 시기가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힘들었던 시간이었지만
거의 손에 들어오다시피 한 기회가 모래알처럼 흘러내렸으니
가슴속에 커다란 돌덩이가 단단히 박힌 채로 깊은 물속으로 끊임없이 빠져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래요... 그저 주어진 기회를 잘 살려보려 애쓴 거밖에 없는데...
이거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아직 나는 포도나무처럼 시련이라는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뿌리가 깊고 튼튼하지 않은데
이제 뿌리를 뻗어보려고 하는 순간에 뿌리가 잘리는 것을 넘어 농장이 불타버렸으니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아니 당장 이 고비를 어떻게 넘겨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멈추어졌고 이제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야 했지만
갑자기 변해버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한동안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앉아서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처럼 조그맣게라도 일이 들어오긴 했지만
손에서 흘러내린 모래 한 줌에 미련이 남아있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저 앉아서 모든 것을 체념하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세상에서 숨 쉬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서 벌어야만 했다.
다행히 예전에 나를 객원 연구원으로 연구용역에 참여시킨 회사의 대표에게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용역에 연구원으로 참여해 달라는 연락을 받아 바로 일을 시작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했었기 때문에 악착같이 일을 해야만 했었고
다행히 내가 했던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다음 일도 이어서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살고 있을 때
10년 넘게 가족으로 지냈던 반려견이 먼저 우리 가족 곁을 떠나고
추석 무렵에는 할머니도 고령으로 가족들 곁을 떠나셨다.
삶과 죽음은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그동안 고마웠다고,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인사도 못했다는 생각에
이제는 옅어질 만도 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슴 한편이 먹먹하다.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시간과 이별의 시간을 겪으며 힘겨운 일 년이 지나갔다.
지금에서 코로나 시기에 무엇을 했는지 컴퓨터에 저장된 프로젝트 폴더들을 보면
유독 그 시기에 폴더들의 숫자가 무척이나 적게 보인다.
계속 제안서도 제출하고, 일을 받아보려 여기저기 미팅도 하고 다녔지만
객원 연구원으로 참여하여 진행한 일이 대부분이었고,
간간히 회사로 들어오는 작은 일이 몇 건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전 직장에 남아있는 분을 회사로 합류시켜 같이 일하게 되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같이 하면 무슨 방법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본격적으로 같이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단 당장 급여를 지급해야 하니 소상공인 지원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다행히 대출 지원 대상이어서 우선 대출을 받아 급여 문제부터 해결하였다.
그래도 다행히 그분이 기존에 본인이 하고 있던 일을 들고 와서
회사에 매출이 나 혼자 할 때보다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거리두기 시기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제한되어 있던 상황에서
바로 옆에 상의할 수 있는 동료가 생겼다는 것이 당시에는 큰 힘이 되었다.
일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끝나고 회사 근처에서 같이 저녁을 하며 이 시기만 잘 넘겨서
앞으로 이런저런 일도 크게 해 보자는 얘기를 하며 희망을 보기도 했었다.
당장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어도 기존의 일을 계속할 수 있었고
새로운 곳에서 일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어려운 시기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갈등도 자신감과 같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서로 일하는 스타일과 회사를 어떻게 키워나갈 지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보니
조금씩 부딪히는 부분이 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때그때 대화를 하며 오해를 풀어 갔었지만
풀어지는 오해는 서로의 생각에 조금씩 앙금을 남겨 놓기 시작했다.
내가 덜 성숙해서인지, 아니면 대표로서의 준비가 덜 되었었는지
내가 조금 더 양보하고 한 발 더 생각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들기는 하지만
이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처음 의기투합해서 잘해보자는 생각도 모래성에 금이 가듯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살랑이는 물살에 무너져 휩쓸려 가서 흔적도 희미하게 남아있게 되었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에 합류시켜 의지하며 힘든 시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지지해 준 분이었건만
작은 오해와 의심이라는 눈덩이가 점점 커져 눈사태가 되어 걷잡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 다음 해 여름, 그분이 수임한 교육 운영 일을 마친 후 다시 회사는 1인 기업으로 돌아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주변에 괜찮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고 이제는 소수의 사람들이 주변에 남아있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과의 인연을 잘 유지하는 것이라는데
나는 그동안 중요한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지금의 어려움도 과거의 내가 중요한 것을 제대로 못한 것이 조금씩 쌓여 만들어진 것이리라...
사람의 것이 영원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 영향은 계속 남아있는데
당시의 나는 왜 그런 것을 알지 못하고 마냥 흘려보냈었을까...
눈앞에 과거의 장면들을 영사기에 투영된 필름처럼 보면서
미련 아닌 미련에 후회를 살포시 덮어 또 한 번 한숨을 내쉰다.
언제쯤 이 지랄 같은 성격이 가라앉을까...
언제쯤 마음에 여유가 생겨 너그럽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까...
앞으로 살아갈 날이 지나온 날들만큼, 아니 어쩌면 조금 더 길게 남아 있을 텐데
지나온 날들을 답습하며 그대로 살아갈 수 없고, 살아가서는 안되기에
아직까지 나는 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더 받아 익어가야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