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개똥이 거기에 있는지 몰랐어요...
"나한테 20만 원 보내줄 수 있니?"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의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며 엄마가 물어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을 하기 위해 작은 아버지 댁에 고춧가루를 보내달라 했는데
고춧가루 값이 필요하다는 것을 동생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듣는 것처럼 엄마에게 되물어본다.
"왜? 어디에 쓰시게?"
"아니 김장하려고 작은집에 고춧가루 보내달라고 했는데 돈 보내려고..."
어디에 쓸지 얘기는 했지만 목소리에는 김이 좀 빠진 채 말끝을 흐리며 얘기하는 엄마를 보며
알겠다고 퉁명스럽게 말을 한다.
'하... 이번 달에 나도 간당간당한데....'
10월에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것과 회사 운영을 위해 추가적으로 나가는 돈이 있어
어떻게 하면 가진 것에서 잘 막아볼까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는 중에
고춧가루 사기 위해 돈 보내달라는 엄마를 보며 나도 모르게 짜증과 한숨이 나온다.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지만 근래 2년간은 수입이 들쭉날쭉 하다 보니 엄마에게 매달 건네줬던
생활비도 못주고 있는 상태라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든다.
집안 형편이 여유 있는 것도 아니고, 나 역시 요 근래에 집에 생활비도 못줄 정도로 수입이 부족하니
엄마도 얘기를 할까 말까 하다 겨우 나에게 부탁을 했으리라.
저녁을 다 먹고 수저를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스마트폰을 들어 은행어플을 켜고 엄마 계좌로 20만 원을 보내고 확인해 보시라고 얘기를 한 뒤
저녁 먹은 상을 치우며 설거지를 하기 시작한다.
입금되었다는 문자를 확인한 엄마는 설거지하는 아들의 뒤에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티브이를 보기 시작한다.
고춧가루 살 돈도 겨우 보내는 나 자신에 대해 화도 나지만
자식들에게 돈을 부탁하는 엄마의 심정은 어떨지 생각하면 그저 먹먹할 뿐이다.
가난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풍족한 것도 아니고
매달 벌어오는 돈으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삶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던 적이 있었을까
운전하는 것 외에 다른 재주가 없었던 아버지는 일을 그만둘 때까지 운전 일만 하셨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실하게 가정을 꾸려간 가장은 아니었다.
밖에서 일하시는 것보다 집에서 쉬시는 때가 많았고
삼시세끼 먹는 것에 그저 만족하며 자신의 살아가는 방식에 후회 없다고 얘기를 했다.
겨우 생활을 꾸려갈 정도의 생활이다 보니
어릴 때 엄마가 항상 했던 말은 하지 마, 참아, 안돼, 너 왜 이랬어였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생활이다 보니 두 분이 싸우는 것도 참 많이 봐왔다.
말다툼에서부터 없는 살림도 내동댕이 치는 싸움까지
그럴 때마다 어렸던 나와 동생은 무서워서 울기만 하고
이웃의 아주머니들이 와서 싸움을 말리고 방구석에서 울고 있는 어린 남매를 달래주었다.
가끔 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어렸을 적 얘기를 하게 되면
어떻게 우리가 삐뚤어지지 않고 살아왔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어린 남매에게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어릴 적 마음 깊숙이 남은 응어리가 어찌 보면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무게추가 되어
삐뚤어지고 싶고 멋대로 하고 싶어도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부모님에 대한 마음은 온전한 사랑과 애틋함과는 거리가 있다.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그것을 덮어버리는 상처가 아직 깊게 있다 보니
그동안은 그렇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 살아왔다.
아마 동생이 중간에 없었다면 일 년에 몇 번 연락하고 보는 사이가 되지 않았을까...
이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 응어리도 조금은 풀어질 법도 한데
아직도 그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철이 더 들어야 할지 아니면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마음을 내버려 둬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약간의 힌트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오늘도 일상에 치여 살다 보니 똑같은 마음으로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