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맞은 내 인생, 개똥처럼 흔적은 남네

나도 개똥이 거기에 있는지 몰랐어요...

by 잉여인간

2. Ode to my family (3)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보고 기일이 다가올수록

평일이 주는 압박감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는 요즘,

주말이 주는 여유는 업무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고

복잡한 머릿속을 비울 수 있게 해 줘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지난주 토요일에 집에서 쉬다가 가족 모두가 외식한 지 조금 오래됐다는 생각에

날씨도 추워지는데 간만에 다 같이 고기 먹으러 가자고 말을 꺼냈다.

시간밥 챙겨드시는 아버지 덕분에 오후 5시에 자주 찾는 고깃집에 도착해서

메뉴를 주문하고 테이블을 세팅한 후 열심히 고기를 구워 먹기 시작한다.

셀프코너에 가서 본인이 드시고 싶은 음식을 리필하기 위해 아버지가 잠깐 자리를 뜨자마자

엄마는 지나가는 말로 아버지의 흉을 보기 시작한다.

잠시 듣고 있던 동생이 그만하라는 말을 하고 약간 표정이 굳은 채 고기를 굽다가

옆에 앉아있는 나에게 넌지시 기분이 안 좋아졌다는 얘기를 건넨다.

엄마가 아버지 흉을 보는 게 거의 일상이 되다시피 해서 나 역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간만에 저녁 먹으러 나와서 버릇처럼 저리 얘기하는 엄마를 마주 보는 게 싫었다.

어쨌든 다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외식 후에 항상 가는 카페로 향했다.

주문한 커피와 빵을 가지고 자리에 앉아 각자 커피 한 모금을 한 뒤 동생이 얘기한다.

"엄마, 아빠 하고 싶은 얘기 없어?"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는 부모님은 갑작스러운 동생의 질문에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동생을 바라본다.

"아니 각자 가족들에게 불만이 있을 거 아냐? 불만이 뭔지 얘기해야 할거 아냐"

다소 억양이 높아진 채 동생을 말을 이어갔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에 대한 불만, 그로 인해 본인이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 동생은 토로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울컥했는지 카운터에서 가져온 티슈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동생이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던 부모님은 그제야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불만을 한 마디씩 꺼내기 시작한다.

가만히 가족들이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던 나는 세 사람의 얘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얘기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정리한 것을 입 밖으로 꺼낸다.

아무래도 살아온 만큼 서로에 대해 감정의 골이 깊은 것 같다,

그 감정의 골은 죽을 때까지 메워지지 않을 거니 서로 말이라도 조금 부드럽게 해 보자라는 말을

조금 장황하게 떠들며 얘기하며 다소 격양된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깊은 감정의 골을 조금도 메우지 못한 채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 집으로 향한다.


가족을 부양하는데 별 관심이 없던 아버지로 인해

엄마는 어렸을 때 다양한 부업을 하며 가정을 꾸려갔었다.

게다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은 애꿎은 가족들에게 술주정과 화풀이를 하느라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술은 마셔도 어느 정도 마시고 나면 더 이상 입에 대지 않는다.

아마 어렸을 적 기억이 너무 생생하게 남아서 술 마시고 절대 저러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속의 브레이크가 작동해서 그런 것 같다.

동생이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우리 집의 실질적 가장은 동생이 되었다.

기본적인 생활비와 대소사로 인해 필요한 돈은 동생에게 나왔으니

지금도 엄마는 무슨 일이 나면 우선 동생부터 찾는다.

나 역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집에 필요한 돈은 주었다고 하지만

동생에게 비하면 얘기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게다가 요 몇 년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매달 엄마에게 주고 있었던 생활비를 주지 못하는 형편이라

동생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동안 가장의 노릇을 하느라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는 아버지와 작은 불만이라도 동생에게 얘기하는 엄마를 보며

참고 참아왔던 화가 저녁을 먹으며 터진 동생을 보며 그저 얘기만 듣고 있었을 뿐이다.

동생에게 지워진 가족이라는 짐을 하루라도 빨리 덜어주고 싶어

오늘도 그저 묵묵히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 일을 할 뿐이다.


요즘 들어 동생은 사는 게 너무 답답해서인지 자주 연차를 내며 여행을 다니고 있다.

겉으로는 내색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이제는 가족들 보는 것도 버거울 것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에도 엄마와 여행을 다녀왔는데 엄마에게 불만이 조금 더 쌓인 채로 돌아와

여행에서 어땠는지 얘기를 하는 동생을 보며 이제는 혼자 편하게 다니라는 말만 건넬 수밖에 없었다.

이번 주에도 주말에 여행을 간다고 하며 같이 갈 거냐고 묻는 동생에게

집에서 일을 좀 해야 할 것 같다며 혼자 가서 편하게 다니다 오라고 했다.

회사일에 가족일에 조금씩 힘겨워하는 동생에게

큰 도움은 주지 못하더라도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부모님 보다는 동생에게 미안함과 애틋한 마음만 들어간다.

저녁에 밥 하기 싫다는 핑계를 대며 밖에서 외식하자고 동생에게 카톡을 보내니

닭갈비 먹으러 가자는 답이 온다.

오늘 저녁도 동생의 얘기를 들으며 술 한잔과 함께 식사를 해보려 한다.

지금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얘기를 들어주고 저녁을 사는 것밖에 없지만

조금이라도 좋아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