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개똥이 거기에 있는지 몰랐어요...
지금은 우리 곁에 없지만
신해철이라는 사람은 내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의 플레이리스트,
아니 삶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뮤지션이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그가 어떠한 뮤지션이었고,
어떠한 음악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는지를 알고 있으리라.
그가 우리에게 남긴 여러 음악 중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곡을 4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 자주 듣고 있다.
니가 진짜로 진짜로 원하는 게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 나이를 퍼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그저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던 10대 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인생이 고속도로를 타는 자동차처럼 쭉쭉 질주할 것 같았다.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 마냥 조금이라도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면 큰일 나는 것처럼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강박이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가면서 조금씩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대학에 가서 어떤 공부를 해서 어떻게 성장하겠다는 목표도 달리 없었다.
그저 좋아했던 역사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수능을 보고 대학에 지원할 때쯤 그저 막연히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역사분야 과가 있는 학부에 지원하여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합격통지서를 찾으러 가던 날,
아버지는 내색을 하지 않으셨지만 통지서를 받고 그 당시 대학 근처에 있었던 고깃집에서 점심을 사주셨다.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게 집안에서 내가 처음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점심을 먹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집에 도착해서도 계속 합격통지서를 보고 계셨다.
20살, 3월의 대학은 아직 겨울의 마지막을 벗어나는 문턱에 있어서 쌀쌀했지만
중, 고등학교에서 공부만 할 줄 알았던 나에게 새롭고 낯선 세상이었다.
학교에서 정해준 대로 같은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던 생활이
갑자기 나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실행해야 하는 생활로 바뀌었지만
그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게 되어서, 같이 진학한 친구들도 있어서 그리 막막한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은 다시 수능을 공부하겠노라 하며 수험생활을 시작했고,
붙임성 없는 내향적 성격이었던 나는 하나둘씩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떠나자 조금씩 고립되어 갔다.
그러면서 마음 한 편으로는 역사 공부를 전공으로 정하는 것이 맞나,
그리고 조금 더 수험생활을 하면 지금보다 좋은 학교로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인생 첫 학기를 그저 그렇게 보내고 난 뒤
휴학계를 제출하고 독학으로 반수를 해서 더 좋은 학교로 가겠다고 부모님께 얘기한 뒤
수능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에 반수를 하겠다고 학원비를 손 벌리는 게 싫어
집 근처 공립도서관에 등록을 하고 집에 아직 버리지 않은 교재와 문제집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좋은 학교로 가겠다는 것 외에 딱히 목적이 있는 수험생활이 아니어서 그런지
고3 생활만큼 집중해서 하지 못했다.
그저 의미 없이 문제를 풀고, 채점하고, 풀고, 채점하고...
당연히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항상 제자리걸음만 걸을 뿐,
그렇다고 딱히 속상해하거나 나 자신에게 분노하지는 않았다.
이미 한 번 대학 진학에 나름 성공했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반년을 보내고 다시 수능을 치른 그날, 집으로 오는 길이 그리 경쾌하지는 않았다.
반년 동안 조금 더 독하게 할걸...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그렇게 준비했던가...
한 걸음 한 걸음 후회만 남겼던 발걸음으로 기억한다.
집에 와서 가채점을 해보니 전보다 약간 오른 점수만이 남았고,
그렇다고 복학하는 것은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과를 바꿔 다시 입학원서를 제출했고,
지금은 내 인생의 절반을 한참 넘긴 시간을 같이한
나에게 있어 가족과 같은 친구와 함께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다시 입학한 과는 상경계열 학과였고,
당시 상경계열 과는 졸업하고 취업하는데 문제없었던 시기여서
대학을 졸업해서 좋은 회사에 취업해 얼른 돈을 벌어 넉넉하지 않은 삶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년도에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떻게 대학 생활을 하고 싶은지
나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가고 싶은 대학들 중 하나에 그것도 두 번씩이나 입학했는데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라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데 있어 룸미러만 보고 운전했지 앞을 보고 운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고속도로를 타고 질주할 것 같았던 내 인생이라는 자동차는
고속도로 입구에서 기나긴 정체를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