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개똥이 거기에 있는지 몰랐어요...
1학기 여름방학을 아르바이트와 동아리 활동으로 보내고
입학할 때와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약간의 자신감을 거름으로 조금은 성장했다고 생각한 2학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여름의 끝자락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아직은 무더위가 뒤끝을 부리고 있던 캠퍼스에는
두 달여 동안 이삭이 조금은 노랗게 여문 이제는 대학생의 티를 내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고,
몇몇 나타나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나타나지 않은 친구들에게 딱히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각자의 사정이 어떤지 얘기를 나눌 정도로 관계가 깊지 않아서 인지
연락을 하는 게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리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 싫었다.
다른 친구들과 방학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가듯이 안부를 물어보고
으레 그래왔듯이 뭐 그랬구나, 그래서 어떻다고 하니 정도의 되묻기 말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새로운 학기에 접어들면서 스스로를 억누르고 갉아먹었던 지난날에 대한 보상을 바랐던 것일까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조금은 나태하게, 조금은 기분대로, 조금은 의욕 없이, 조금은 내 멋대로 보냈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중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별의별 모습을 보였고
딱히 나 스스로 하루하루 순간마다 달라지는 기분의 롤러코스터를 통제하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무엇을 하고 싶어서였을까, 무엇을 원했던 것이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딱 떨어지는 답이 나오지 않은 시기였다.
그저 요동치는 감정의 곡선을 따라 나 자신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가챠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뒤끝을 부리던 무더위가 코끝을 겨누는 칼바람으로 모습을 바꿀 때쯤
살아가는 데 있어 그리 반갑지 않은 그렇다고 되돌려 보낼 수 없는 한 장의 편도티켓을 받게 되었다.
입영통지서.
종착지 육군훈련소.
도착시간 200X 년 4월 X일 XX시.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그저 받아야 할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어떻게 할까. 연기 신청을 할까, 아니면 날짜에 맞춰 떠나야 할까...
쳇바퀴 한 번을 돌렸다고 하지만 이제 1학년이 끝나가는 시기였고,
내년에는 우리 기수가 동아리 신입 회원을 받아 같이 활동을 다니고 동아리 생활을 이끌어야 하는데
나이를 생각해 바로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자마자 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가뜩이나 흐린 오후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입영통지서라는 편도티켓은 발목에 무거운 납덩이를 채우고
점차 감정의 소용돌이를 따라 심연으로 나를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2학년을 마치고 갈지, 아니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갈지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기말고사를 끝내고 입대를 선택한 선배들과 친구들이 밤송이 같은 머리를 하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20대 청년이라고 하지만 짧은 머리의 그들은 소년의 티를 벗어낸지 얼마 되지 않은 아직은 앳된 어른이었다.
모자를 벗고 짧은 머리의 수줍은 웃음과 한숨을 보이며
추운 날 낯선 환경에서 홀로 견뎌야 하는 것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괜찮다는 말을 건넨 후
하나둘씩 논산으로 춘천으로 의정부로 제각기 정해진 도착지로 떠나갔다.
그나마 4월로 입대날짜가 정해져 있는 나는
한 겨울에 떠나는 사람들에 비해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한 것일지 몰라도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떠나가는 그들에게 곧 다가올 4월의 내 모습을 덧씌워 보며
일 년의 학교생활을 더하는 것보다 찰나의 시간이라도 빨리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기말고사 과목을 끝낸 다음날,
나는 또다시 고모부의 회사로 발걸음을 향했다.
떠나야 하는 날짜를 정해놓아서 인지 이번의 아르바이트가 어쩌면 이 회사에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만난 사람들에게 첫날부터 벚꽃이 피는 시기에 논산으로 가게 되었다고 말하고
그 전과 다름없는 아르바이트 업무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2년여 동안 할 수 없는 동아리 활동들에 대한 아쉬움이 미리 왔던 것인지 몰라도
이번 겨울의 동아리 활동은 하나 더 늘려 참여하게 되었다.
겨울방학 생활을 하면서 입대를 일 년 더 미루고 학교 생활을 같이 하자고 권유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미 정해진 날짜에 떠나기로 마음먹은 터라
떠나기 전까지 재밌게 지내보자는 말 이외에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르바이트와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된 1학년의 겨울방학은 남쪽의 개나리 소식이 들릴 때쯤 끝나갔고
4월의 그날을 향해 나의 시간은 점차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