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개똥이 거기에 있는지 몰랐어요...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캠퍼스,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 티가 나는 2학년이 되어야 했지만
군입대 휴학으로 내 시간은 1학년에서 멈춰 있었다.
입대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계속해도 되었지만
신입생을 받겠다는 명목하에 3월 한 달간 동아리 방에서 지박령처럼 지냈다.
처음 동아리에 가입하기 위해 미지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게 엊그제였는데
이제는 내 방에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으니 나도 동아리 사람이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껏 살아온 세상과 너무 동떨어진 세상으로 향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한숨을 내뱉는 횟수가 늘어만 갔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어 동아리 방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았다.
방학을 마치고 다시 동아리 방에 나온 선배들과 동기들
설렘과 호기심으로 동아리에 찾아온 신입생들
딱히 할 일은 없어도 하루 종일 동아리 방에 앉아 사람들을 맞이하다 보니
어느새인가 사람들을 맞이하는 게 내 일인 마냥 동아리 방문이 열리면 누가 들어올지 은근히 기대도 되었다.
하지만 수업으로, 각자의 일정으로 그들이 떠난 자리에 홀로 앉아 있으면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커다란 파도와 같이 몰려들어 쉽게 휩쓸려 떠내려갔다.
한 달 동안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하고
곁에 있던 친구들을 하나둘씩 각자의 새로운 세상으로 배웅하다 보니
어느새 나 역시도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떠나갈 시간이 다가왔다.
떠나는 날 아침엔 일찍 부모님께 큰 절 올리고 엄마와 같이 집을 나섰다.
기차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창문을 내다보니 엄마는 잘 다녀오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 채
그저 연신 눈물을 훔치며 한 동안 보지 못할 아들의 모습을 그저 하염없이 보고만 있었다.
훈련소로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기차역에는 동기들과 조금은 가까워진 후배들이 나와 있었고
우리를 태운 기차는 논산역으로 속도를 높여가기 시작했다.
기차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는 아무리 기억해 보아도 안갯속에 있는 것처럼 뿌옇게 보이지만
논산역에 가까워지자 이등병의 편지 노래가 흘러나오며 오늘 입대하는 분들 건강히 잘 다녀오라는
기관사의 인사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다른 입대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식사와 전화를 하고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며 같이 온 사람들에게 조만간 건강히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입대장정이 되어 건물 모퉁이로 사람들을 뒤로하고 훈련소에 첫 발을 내디뎠다.
훈련소에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지냈는지는 굳이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군대 가기 전 모두가 당부했던 것처럼
나서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은 훈련소 생활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기차에서 흘러나온 이등병의 편지와 같이 훈련소를 기억나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눈꽃처럼 흩날리던 벚꽃잎과
다른 하나는 훈련소 주변의 딸기밭에서 진하게 풍겨졌던 딸기향
아직도 훈련소 하면 이 두 가지가 내 시각과 후각을 그때로 되돌려 놓고 있다.
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주특기를 받아 한 달간 교육을 마친 뒤
자대배치를 받고 나를 태운 기차와 버스는 수도권을 향해 갔다.
주특기 교육을 마치고 자대 발표가 났을 때
정말 처음 들어본 부대로 배치가 되어 궁금함과 두려움이 앞섰는데
막상 서울 바로 옆에 위치한 부대가 2년 간 내가 살 집이 되었다는 것에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자대에서 처음 부모님께 통화한 날, 생각보다 아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에 조금은 마음을 놓으셨던 것 같다.
나 역시도 군생활을 서울 옆에서 하게 되었다는 것과
같이 생활을 하게 될 사람들이 듣던 것보다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것에
긴장은 하지만 두려움을 한 시름 풀었다.
2년 간의 자대 생활은 솔직히 얘기하자면 편했다.
먼저 군대를 다녀온 선배들과 친구들의 얘기와는 다르게 일반 보병부대가 아니어서 인지
군 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느끼고 생각하는 점 이외에는 고달프거나 힘들거나 했던 일이 딱히 없었다.
상호 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며 심각하게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히려 내가 한 일에 비해 과분하게 관심과 애정을 받아서 인지 상당히 자주 집에 다녀갔고,
특히 명절을 자대에서 보낸 적이 없다 보니 명절에 만난 친척들은 군대 간 것이 맞는지 묻기도 했다.
무슨 복이 있었길래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괜찮은 자대 생활을 했었을까...
물론 사람들과의 갈등이나 힘들었던 순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받아들이고 참을 수 있는 수준이어서 어디 가서 힘들게 군생활 했다고 말할 처지가 못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에는 어둠이 있는 법.
몸과 마음이 편해져서 인지 몰라도
제대 후에 무엇을 하고, 졸업 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도 하고 결정도 해야 했는데
집에 다녀올 생각과 제대하고 복학해서 생각해 봐야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다시 시작할 대학생활에 독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