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용하기 조금 애매한 단어들은 그 사전적 의미를 찾곤 합니다. 예를들면, ‘내 전시품을 불출하다’와 ‘내 전시품을 반출하다’는 뭔가 내어주는 의미 같은데 속뜻엔 차이가 있어요. 정확히는 불출 ‘돈이나 물품을 내어줌‘, 반출 ’운반하여 냄‘이 됩니다. 상황에 따라서 쓰임이 다르겠지요. 사실 일상에서는 굳이 이를 꼬집거나 따지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강 우리가 해오던 말들, 상황들을 따져보면 ’아 갖다준다는 거구나‘, ’아 알아서 가져가라는 거구나‘를 알 수 있는 상황이 많으니까요.
물론 계약의 상황에선 다르겠죠. 단어 하나하나가 시시비비를 가르는 곳에선 사소한 것까지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다면 더 좋겠지만요.
그러면 혐오는 무엇일까요? 몇 년 전부터 ’혐오‘라는 단어가 꽤 많은 곳에서 쓰였습니다. 제 기억 속에서 ’혐오‘의 등장은 ’극혐‘입니다. 그러다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서 ’여성 혐오‘가 쓰였습니다. 둘은 같은 의미지만 무게감이 살짝 다릅니다. 극혐은 당장 내일 만나는 친구의 얼굴 앞에 숨쉬듯이 뱉을 수 있는데, 여성 혐오는 아니죠.
무슨 애기를 하고 싶은거냐면, 요즘 그 선에 서있는 것 같아서 그래요. 저는 평소에도 왔다갔다 잘해요. 이 말도 맞는 것 같고, 저 말도 맞는 것 같아서요. 귀가 얇은 편이라고 요즘 절실히 느낍니다. 그래도 늘 하나는 꼭 바뀌지 않았는데, ‘적어도 나는 내 편이 되자’는 생각이에요. 나 마저도 나를 포기하거나 미워한다면 그 누가 내 편이 되어줄까 싶습니다. 솔직히 보는 입장에서도 좀 곤란할 수 있어요. 공감해주거나 ‘아니야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고 말해주지만 정작 본인은 자기혐오에 빠져 매몰된다면 옆에 있던 사람도 지칩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탓할 수가 없는게 상황이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느껴요.
엄청 무겁지 않게, 나의 현재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고 좀 별로일 때가 있습니다. 뭐 사소한 실수나 생각치 못한 몰상식한 모습들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내 모습을 후회하고 동시에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나아가는 거라고도 생각해요. 실수없이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아니에요.
인터넷을 찾아봐도 저같은 상황이 많아요. 장문의 고민글, 단문의 두서없는 글들을 보면 세상 사람 다는 아니어도 비슷한 부류가 있구나 싶습니다. 거기서도 힘을 얻곤 했어요. 그런데 그 글들은 아주 단편적인 면이잖아요. 그 사람이 나보다 나은 상황인지, 정말 좋지 않은 상황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사소한 실수들에 대한 이야기일수도 있고, 큰 프로젝트나 업무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유추는 해도 100%는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결국 일시적인 효과만 받게 됩니다.
‘이 분야에 3년 째 있는데, 아직도 뭐를 실수하고 감도 없고 직무변경을 고민중입니다’, ‘당장 오늘부터 뭐를 하라고 하는데, 아는 것도 없고 물어볼 데도 없어서 매일 야근하고 있어요’, ‘저번 주까지 납입하라는 게 있었는데, 전 오늘 처음 들었어요‘, ’올해 지방직 신입인데 들어오자마자 12억짜리 공사를 맡게 되었어요. 위에선 손 놓고 있고 예전 문서들보고 따라만 하면 된다는데 어떡하죠?‘
대강 기억나는 애들만 적어도 이렇네요. 당시에 읽을 땐, 그래도 저 상황들보단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상황이 문제인 것 같은거에요. 예전엔 전공 시간에 유형을 나눴던 게 기억이 났어요.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관대한 사람들이 한국에 많다고 들었어요. 저도 그 유형인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 잘 안 풀리는 일들이 단순히 내 능력탓이고, 변명의 여지가 없고, 내 노력이 부족함을 뜻하는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이를 반박할만한 근거가 없어요. 일을 감당할 능력도 없고, 해결하려는 노력도 없고(솔직히 노력은 했는데 능력없는 노력은 그냥 노가다와 같아요), 시간은 이미 흘러서 뒤늦게 담을 수도 없는 상태. 인생에 큰 오점으로 남을 것 같은 실시간. 도망도 갈 수 없어 온전히 다 받아내야 하고 건드리는 것마다 삐그덕 대서 뭘 시작하기도 무서워지고 처음부터 작았던 자신감마저 없어지게 되는. 그러다보니 주변에서 짚어주는대로 생각하게 되고 더 이상의 확장적인 사고는 거의 없으며, 주어진 것에만 집중해 다른 부분에서 또 놓치는 것이 발생하게 됩니다. 왜 처음부터 이렇게 하지 않았냐고 물으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고 말하는 수 밖에 없고, 땅만 보게 되고 뭔가를 제시할 때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게 됩니다. 그런 경우엔 듣는 사람도 좋게 봐줄리 없고 애초부터 빈틈이 많은 제안이라 다시 하나하나 짚게 됩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없어서 도와달라는 말도 못하고(심지어 도움이 필요한 상황임을 인지조차도 못했고), 이렇게만 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게 큰 일도 아니고 작은 부분인데, 그 긴 기간동안 결국 한거라고는 부실한 계획뿐이며 이제와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뿐이라 어찌저찌 넘어가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처음엔 나의 입지나 평판을 구리게 만들면서까지 지내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시간은 늦은 것 같고 내가 없는 뒤에 ‘저 사람은 별로였어’라고 말하는 상상까지 하게 됩니다. 결국 세상엔 사람이 많다는 생각에 ‘이쪽으론 거들떠도 보지 않으면 돼’라고 다짐하지만, ‘이런 작은 일도 해내지 못하는 내가 어디가서 환영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뒤를 따르게 됩니다. 그러면 아예 처음부터 생각을 해야하죠.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잘 맞는 일은 무엇일까, 아니면 내가 잘하는게 있긴 할까? 등 나에 대한 생각을 처음부터 깊게 해야할 것 같아요. 이전에 너무 안일하게 살았던 탓인지 나이도 나이고 해왔던 것들은 현재엔 도움이 안 되고, 과거가 그러하면 미래는 기대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난다고 해도 기억은 남을 것이고, 뭔가를 시작하려면 이 과거를 떠올리지 않고는 불가능할텐데 혹은 싫더라도 떠올리게 될텐데 그런 상황도 힘겨울 뿐입니다. 자발적인 도망자는 되고 싶지 않아서 그런 상황만이 오기를 바라고 내 탓은 아니었으면 하고 뿌듯함은 잃은지 오래입니다.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고 근본적으로 내가 나를 좋아하지 않게 된 상황을 하루에 대부분으로 마주하게 된다면, 현재는 의식적으로 그런 감정을 인지하게 되지만 나중엔 전후과정을 건너뛰어 자기혐오라는 자동적인 의식과 감정만이 남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경상에 가까울 수 있어요.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게 전혀 떠오르지 않아 그저 온몸으로 받아낼 뿐이며, 이 모든 게 끝날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은 외면해오던 게 제 평소의 모습인데, 그러다보니 더더욱 게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헬스도 안 한 지 꽤 되었고, 블로그도 두 달 가까이 안 쓴 것 같고, 애초에 글쓰기 자체를 거의 손 놓고 있었습니다. 하는 것이라곤 출근과 가끔 런닝, 매우 많은 시간의 게임이 되겠네요. 어느 순간 마음 먹고 하는 외출이 아니라면 간단한 외출은 꺼리게 되고, 집이 좋고, 게임으로써 현실을 보상받고 싶고 치유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최근에 살을 엄청 뺐던 유튜버에 대한 이야기 이슈더라고요. 그 분은 사회실험을 한 것이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그냥 다이어트 같아요. 아무튼 나도 사회실험을 당하는 중인가 싶었어요. 처음엔 내가 이렇게 모지린가 싶어서, 현실이 트루먼쇼일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말그대로 현실이었습니다. 앞으로의 3개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그 때는 상황이나 생각이 나아질지 모르겠네요. 글은 생각나는대로 써서 현재 상황을 더 어둡게 봤을 수도 있고 반대로 이게 순화된 것일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건 공감을 바라거나 해결책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푸념입니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있고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저 견디고 버티는 동안 부서지지만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