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끝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피한 것일 수도 있고 생각이 미처 거기까지 닿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결론적으론 끝은 부정적이고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피해 다녔던 것 같다. 처음 끝을 마주한 것은 만화를 봤을 때와 삼촌들과의 헤어짐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으나 비슷한 시기였을 것이다.
어릴 때 TV를 끼고 살았다. 만화와 게임 대회를 주로 보았다. 드라마나 사극은 취향이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귀가하셨을 땐 어쩔 수 없이 봤다. 디지몬어드벤처를 투니버스에서 보여줬었다. 짧고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지만 어찌어찌 끝까지 보게 되었다. 디지몬은 볼 때마다 뭔가 뭉클하게 이입이 된다. 나이대도 그래서 그런지 주제도 주제인지라 크게 느껴졌다. 물론 보면서 깔깔댈 때는 몰랐으나 기차를 타고 끝을 향해 갈 땐 ‘이게 정말 끝인가?’, ‘이제 이거 안 한다고?’ 싶었다. 아직도 낮에 혼자 불 켜진 거실에서 소파에 앉아 보다가 멍해진 기억이 난다. 그냥 매번 하는 인사와 형식적인 멘트인 줄 알았는데 노래도 그렇고 눈에 고인 눈물들도 그렇고 ‘그동안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현실을 깨닫게 해 줬다. 그때는 내가 보지 않아도 그들의 서사가 계속될 줄 알았다. 내가 모르는 어디선가 다른 시간이 흐르겠거니 하며. 그걸 가끔 안부 묻듯이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끝이 나니, ‘그럼 나는 어쩌라는 거지?’ 싶었다. 그 정도까진 아니었어도 정말 이대로 끝인가 싶었다. 그렇게 강조하던 친구 사이의 우정이랑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심지어 떠나가는 기차가 나오기 전까지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제 와서 보면 끝이나 헤어짐은 그렇게 갑자기 오기도 하는구나 싶다.
나이가 든 상태에서 보면 꽤 괜찮게 구성했다고 느꼈을 것 같다. 좋은 결말을 맺는 것은 어찌 보면 제일 큰 과제다. 좋은 작품들이 용두사미의 길로 빠지는 게 빈번하기 때문에 애초에 결말을 정해놓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게 필요할 수 있다. 나름의 완벽한 결말도 그렇게 아쉬움이 남고 슬펐는데 일반적인 결말들이 나를 채울 수 있을까? 한동안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두 번째 끝은 삼촌들과의 헤어짐인데, 슬픈 이야기는 아니다. 두 살, 다섯 살 위 삼촌이 있다. 호칭은 삼촌이지만 형과 다름없게 놀았다. 명절과 휴가 때 자주 보았는데 항상 헤어질 때가 되면 정말 아쉬웠다. 어느 날은 집에 가는 차에서 눈물이 났다. 왠지 모르게 났었고 엉엉 울진 않았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렀는데 엄마한테 들켰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닌가 엉엉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돌아갈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슬펐다. 아직도 그게 울 일인가 싶지만 그땐 그게 큰 끝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작은 끝도 있다고 느낀다. 작은 끝도 끝이고 마음이 쓰이고 슬플 수 있구나 싶다. 생각해 보면 삼촌들은 꽤 바빴다. 공부를 잘해서 학원을 많이 다닌 것인지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으나 휴가 때도 한 번씩은 일찍 돌아가거나 둘 중 한 명은 오지 못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듦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그 기간에 너무 재밌게 놀아서 아쉬움도 컸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울 가치는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이런 끝의 경험이 꽤 충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동안은 새드엔딩을 좋아한다고 얘기하고 다녔다. 새드엔딩을 경험한 적도 거의 없는데 말이다. 반전영화를 좋아한다고 얘기한 적도 있는데 TV에서 틀어준 ‘베리드’라는 영화 한 편만을 보고 한 말이다. 심지어 그건 결말 부분 10분만 봤다. 그러고 나서 반전영화를 검색해 봤지만 딱히 끌리는 게 없어 더 찾아보진 않았다. 그 당시엔 행복한 결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헤어짐과 끝은 슬프고 피해야 할 것인데 그걸 어떻게 ‘좋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다르게 생각할 여지없이 피하고 다른 결말을 찾고 그랬다. 그래서 열린 결말도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진짜 엔딩을 유추하고 누군가 말해줬으면 했다. 시행착오가 이래저래 않아던 것 같다.
지금은 위의 것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구성이 잘 짜여있다면, 납득이 된다면, 재미있다면, 그게 내게 맞는 결말이고 좋다. 애초에 그렇게 깊게 생각하거나 분석하지 않아서 기준은 되게 낮은 편이다. 그리고 웹툰이나 만화, 영화, 드라마, 책 등을 보다 보니 결말이 익숙해졌다. 끝이 자주 있기도 했고 시작이 많아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만화 하나가 끝났다고 매번 울 순 없고 영화 하나가 끝났다고 그것만 보고 있을 순 없었다. 영화는 2편도 나오고 3편도 나오고 어떤 건 7편까지도 나오더라. 그리고 다른 재밌는 영화도 계속 나오고 그러다 보면 9년 전 영화의 속편이 갑자기 나오기도 한다. 그러면 1편이 벌써 9년이나 지났구나 싶다. 새로운 시작들이 많다 보니 끝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에서도 그러한데 다른 건 심하면 심했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매번 울 순 없으니 정말 중요할 때만 잘 챙기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끝맺음을 잘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긴데 내가 끝을 잘 맺질 못해서 그런지 굳이 잘할 필요 있나 싶다. 그래서 옛날에 열린 결말, 새드엔딩 같은 것을 좋아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