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우아웃풋클럽 5회차
영화 <트위스터스> 약간의 스포 있음
한국에서는 영화 ‘미나리’로 유명한 정이삭 감독의 최신작 <트위스터스>를 보고 왔다. 영화 열심히 보는 지인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고, 돌비관에서 상영을 해주길래 냉큼 다녀왔다.
현시대에 필요한 영웅의 성장 서사를 부담없이 풀어낸 것도 좋았고, 재난 영화로서의 기승전결이 지루하지 않게 구성되어 재미도 충분했다. 그런데 내가 집중해 버린 부분은 <트위스터스> 속 동료애와 팀워크였다. 사람은 어디서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본다는 점에서, 요즘 내게 ‘마음 맞는 동료’와 ‘팀워크’라는 화두가 요즘 꽤나 중요하다는 걸 스스로 다시금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영화는 종합적으로 ‘실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좋은 팀을 찾아 창업해야 된다’가 아닐까… 라는 잔뜩 징그러운 생각을 했다. 여기서 ‘징그럽다’란 동료들끼리 자주하는 일종의 내부자 밈이자 자학 개그다. 해피엔딩 재난 영화를 보는 순간까지 좋은 창업조건, 좋은 동료 조건 이런 깨달음을 얻다니… 으악 징그러워요 (근데 이런 말 하는 나도 같은 류의 사람임)
<트위스터스>는 바람의 방향과 구름의 움직임 그리고 기타등등의 요소를 보고 ‘토네이도’의 세기와 방향성을 추측할 수 있는 천재 소녀 ‘애디’ 이야기다. 토네이도의 방향을 읽어서 사람들이 최대한 피해를 덜 입도록 대피시키고 싶고, 가능하다면 토네이도를 분석해서 소멸시키고 싶다(영화에서는 ‘길들인다’는 표현을 쓴다)는 인류애적 관점의 ‘문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주인공 ‘애디’가 얼마나 천재인지 보여줌과 동시에 애디의 대학교 동아리 절친 4명 중 3명이 토네이도에 휩쓸려 죽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사건은 애디에게 트라우마가 되어, ‘토네이도’를 길들여서 인명 피해를 줄이고 싶다는 가슴 뛰는 꿈을 외면한 채 현장을 벗어나, 기상청 사무직으로 도피 아닌 도피를 선택한다.
사건으로부터 5년 후, 동아리 절친 중 유일한 생존자인 ‘하비’가 투자자를 구해 ‘토데이도 관측’을 사업화했다며 찾아온다. 아직도 토네이도로 인해 엄청난 인명피해가 실존하며, 자신이 토네이도를 3D 모델링 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었는데 이 기술을 더 빠르게 잘 활용하기 위해선 애디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애디는 토네이도로 인한 인명피해를 줄이고 싶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마치 라이벌처럼 등장했으나, 결국 미래의 팀이 될 '테일러와 팀 테일러'를 만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 맞는 팀원 혹은 공동창업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신력’이고, 다른 하나는 ‘사업의 지속가능성’ 때문이다.
‘정신력’이라 함은 내가 대차게 꺾여 번아웃이 오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붙잡아줄 공동창업자 혹은 동료들이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는 ‘테일러’와 ‘팀 테일러’가 그 역할을 해준다.
또 ‘사업의 지속가능성’이라 함은 한 명쯤은 이 일을 ‘사업화’ 하여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줄 사람의 존재이다. ‘하비’라는 인물을 보면서 일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한 명쯤은 어떻게든 재미뿐만 아니라 사업성을 좇아야 하는구나 다시금 느꼈다.
애디는 ‘토네이도로 발생하는 인명피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으로 돌아왔지만, 이후로도 여러 번 어려움에 직면하며 좌절한다. 종국에 ‘다시 일어서기’를 것은 선택하는 것은 애디 자신이지만, 중간 과정에서 애디의 주변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도움을 주게 된다.
애디의 어머니는 어린 애디가 맨 처음에 어떤 마음과 즐거움으로 이 일을 시작하였는지 일깨워준다. 또 애디의 새로운 동료이자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테일러’는 선택한 길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이해하면서도 멈추면 안 될 이유를 계속해서 던져준다. 또 ‘테일러’의 팀원들은 의도치 않았지만, 행동으로 애디에게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멈출 뻔한 애디를 직간접적으로 붙잡아준다.
영화를 보면서 최근 자주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인간 한 명은 본질적으로 혼자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동료가 ‘아이디어 물량공세’ 라는 책을 읽고 알려준 대목 중에 이런 말이 있다. 2000개의 아이디어가 나오면 그 중에서 200개를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데, 이중 1개가 성공한다. 당시 동료와는 이것을 ‘실패를 많이해야 되는 이유’ 의 근거로 이야기 했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는 공동창업자 혹은 팀이 필요한 이유로 떠올렸다. 1번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략 2000개의 실패가 필요하다면, 그 2000번의 실패를 인간이라는 존재가 과연 혼자서 견딜 수 있을까.
꼭 2000개의 실패가 아니어도, 나의 결정에서 말미암아 치명적인 사건(영화에서는 친구들의 죽음일 것이다.) 몇 번만 겪어도 인간은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자력으로 일어서기 어려운 정도로 넘어진 나에게 같은 길에 있는 누군가 손 내밀어준다고 생각만 해도, 결국 다시 일어서는 건 스스로일지라도, 든든하지 않은가. 팀까지 갈 것 없이, 그런 사람이 딱 한 명이라도 옆에 있다면 인생에 있어서 다시 없을 행운일 것이다.
ep9 ‘브리즘’ 편에서 공동창업자가 필요성이 아래와 같이 언급되기도 했다.
나와 문제 의식은 같지만 성향을 다른 사람으로 공동 창업자를 택하라.
• 이유 1 : 성향이 달라야 함은 같은 사람들끼리 창업을 하면 같은 방향으로만 생각해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유 2 : 대표는 모든 것을 잘해야 되고, 선택의 부족함이 바로 사업의 약점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서로 성향이 다른 두 명이서 약점을 채워가며 균형을 잡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결국 <트위스터스>에서 ‘테일러’의 존재가 반갑고 든든한 이유를 종합해보면 이렇다.
(1)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이유가 같다 : ‘토네이도로 인한 인명피해를 줄이고 싶다.’
(2) 우선순위가 같다 : 사업성보다는 사람의 안전을 우선시 하고 싶다
(3) 성향이 다르다 : (애디 또한 해결해야 되는 문제가 있다면 끝까지 정면 돌파 성향이긴 하지만) 테일러는 일을 떠나 기본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성향이 강한 것 같다. 그렇게 성향 덕분에 토네이도에 물리적으로 접근하는 아이디어가 달랐다. 성향 덕분에 팀을 응집되게 하고, 팀이 일을 재미있도록 만드는 리더십도 좋다.
(4) 열정의 온도가 비슷하다 : 둘 다 누구보다 현장에서 앞서 뛰고, 현장에서 활용하기 위한 (이론) 지식의 또한 비슷하다
옆에 이런 동료가 있다면, 그래서 함께 간다는 느낌이 든다면, 설사 잠시 꺾여있는 순간마저 두렵지 않을 것 같다.
또 영화를 보며 3번에서 파생으로 느낀 것이 있다. 내가 팀을 갖고 싶어하지만 팀을 꾸리는 리더십이 없다면, ‘애디’가 ‘테일러’를 만나 ‘팀 테일러’에 합류한 것처럼 이미 즐겁게 일하는 팀에 들어가는 아주 좋은 방법이겠다.
챕터 2를 시작할 때 ‘사업의 지속 가능성’도 중요하다고 했는데 ‘테일러’에게 사업성은 영 약한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유튜브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로서 수입을 열심히 만들고 있긴 한데, 이 자금의 최종 목적지는 장비 구매와 토네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요한 캐릭터가 ‘하비’라는 캐릭터이다. 사실 영화적으로 ‘하비’의 역할이 자금에 한정되지는 않는데, 아래와 같이 ‘사업’에 대해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1) 등장 : 대학 동아리 시절 친구들이 열정에 불타있을 때 어린 나이에 벌써 ‘보조금’ 생각을 함
(2) 재등장 : 스타트업 공동 창업가로 애디와 5년만에 재회함
(3) 엔딩 : 애디가 토네이도 길들이기에 성공하였고, 이걸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투자금이 필요해, 하비, 테일러와 함께 창업하기 전에 잠시 뉴욕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마지막 순간까지 투자금 얘기함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모두 투자금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따듯한 인류애와 지독한 사업가 모먼트를 동시에 갖춘 캐릭터로 기억된다. 이런 ‘하비’라는 캐릭터의 일관성에 몇 번이고 웃다가, 이런 캐릭터를 창조해낸 작가일지 감독이 참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영화 내에서 ‘하비’가 공동창업한 ‘스톰 파’의 기술력이 토네이도 길들이기 시뮬레이션에 큰 도움이 된다. 이처럼 더 커다란 기술력을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다. ‘테일러’와 ‘애디’는 같이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가기 좋은 동료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하비’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좋은 공동창업자이자 동료를 ‘테일러’와 ‘하비’ 라는 구체적인 인간상으로 보여주는데, 동료 1-2명이 있다면 팀이 완성된 것일까? <트위스터스>는 ‘팀 테일러’와 ‘하비’가 공동창업했던 ‘스톰 파’를 통해 개인을 넘어 팀워크에 대해서도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좋은’이란 단순히 도덕적 가치 판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래 두 가지 측면이 갖은 팀이 나에게 좋은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 팀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이유
(2) ‘어려움’을 대하는 팀의 태도
‘스톰 파’와 ‘팀 테일러’는 동일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한다. 토네이도는 왜 발생하여 어디로 가는지 예측할 수 있는가? 에 대해서 해결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이유가 다르다.
‘스톰 파’ : 투자자의 만족을 위해서 - 투자자의 만족이란 태풍으로 인명피해를 받은 사람들에게 부동산 거래를 제안하고 싶어서
‘팀 테일러’ : 태풍으로 인해 인명 피해 및 재산 피해를 막기 위해서
이처럼 해결하고 싶은 것은 같지만, 해결하고 싶은 이유가 다르기 때문에 두 팀은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하비’가 자신이 공동창업한 팀을 나오게 된 계기도 이때이다. 토네이도를 쫓아 원인을 더 자세히 분석할 것이냐 혹은 마을로 가서 사람들의 대피를 도울 것인가. 여기서 하비는 후자를 택해 ‘팀 테일러’와 협렵하게 된다.
결국 팀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왜’가 같아야 하며, 이 ‘왜’에 따라서 우선순위와 방향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먼저 알아야 나에게 더 좋은 팀을 고를 수 있겠다.
‘팀 테일러’는 극 초반 등장 때 굉장히 요란하게 등장한다. 첨단 기술을 갖추고, 단정한 유니폼을 입은 ‘스톰 파’와 달리 장비 또한 핸드메이드로 거칠어 보이고 목숨이 꼭 두 개라도 되는 사람들처럼 토네이도 측정을 위해 거침없이 차를 몰고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팀 테일러’의 분위기와 ‘테일러’의 생각을 대사로 한 줄 정리해 주는 장면이 영화 중후반부에 등장한다. 애디와 테일러가 심리적으로 가까워지는 씬이기도 한데, 테일러가 로데오(미국식 카우보이 쇼)를 보며 이런 말을 한다.
“카우보이들이 소몰이를 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에 올라타라고 하지만, 카우보이들은 두려움을 즐긴다.”
이 대사는 영화 초반에 요란하게 등장했던 ‘팀 테일러’의 분위기와 맞닿아있고, 결국 이 팀이 거대한 문제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대한 답이란 생각도 들었다.
문제 해결 과정 중에서 어떤 벽이 너무 크게 느껴져, 꼭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두려울 때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누군가는 최대한 리스크를 관리해 두려움을 작게 만드려고 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그 두려움마저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누가 옳은지 판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파악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하자는 것이다.
‘애디’는 어렸을 때부터 태풍에 당당히 뛰어드는 소녀였고, 결국 영화 엔딩에서 애디는 ‘팀 테일러’가 극초반에 애디를 경악시켰던 방식을 그대로 태풍에 직접 차를 몰고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결국 ‘인류애’같다.
창업이나 사업 이야기를 괜히 꺼낸 것이 아니라, 영화를 쭉 보면서 느낀 점은 인간은 결국 ‘인류애’를 위해서 일하게 될 것이다. 왜냐면 단순히 생산을 하는 시대는 기계에 의해 끝이 날 테니까. 기계를 통해 목적 없이 생산하는 것은 이미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앞으로 쭉 사람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그렇게 해서 ‘일’과 ‘사업’이 지속되려면) 결국 사람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줘야 되지 않을까?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고, 관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저 이 문제를 꼭 해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어야 머릿 속 아이디어를 실행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귀 기울이고, 관찰하고, 실행하는 마음을 ‘인류애’라고 칭했다.
그런데 마침 이 ‘인류애’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를 보기 전에도, 동료와도 최근에 커피를 사러 가는 길에 했었던 얘기이다. 그때는 사실 동료의 이야기를 들은 것에 가까운데,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다시금 떠올린 걸 보면 이 말이 내 마음 속에 꽤 깊이 와 닿았나 보다.
그럼 결국 나는 어떤 어려움을 해결해보고 싶을까? 창업할 성격은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생겼을 때 이미 그 현장에서 고군분투 중인 서비스와 팀이 있다면 합류하고 싶을 것 같다. 아주 치열하게 일해도 재미있지 않을까. 그래서 왕왕 스타트업 경력직 인터뷰에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걸까? 저 팀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와 비전에 감화되어 안정적인 직장에서 이직을 했어요.
그렇다면 이번 글 또한 결국 ‘내가 즐거운 것, 해결하고 싶은 것, 나의 성향’ 을 찾아야 한다는 게 결론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