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어 글쓰기 4

오리다, 도리다

by 인간아

안 좋은 기억은 오려내는 것이 나을까, 도려내는 것이 나을까. ‘메리골드 세탁소’라는 청소년 소설이 있다. 그 소설을 다루면서,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잃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거나 재현되지 않도록 그래도 간직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오려낼 수도 있고, 도려낼 수도 있다면 어떤 것이 나을까. 나 또한 지나 보면 별일 아닌 일들이 일상 속에 갑자기 쳐들어와 현재의 나를 이불킥하게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라는 책을 읽다가 사람들이 나쁜 일에 대한 되새김을 왜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나와 있어 흥미로웠다. 즉, 실수에 대한 반추는 그 문제를 합리적으로 변명하여 실수의 비극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36쪽) 즉 침투한 자극을 해소하기 위한 인간의 살기 위한 해법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와중에 도려내는 것을 선택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내 기억에서 깨끗하게 지워져 사라져 버리면 나야 가볍고 좋겠지만, 돌이켜보니 그 기억과 연결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영화 ‘밀양’에서, 아이를 잃은 엄마는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신을 운운하며 용서를 받았다고, 너무나 뻔뻔하고 편한 얼굴로 스스럼 없이 말하던 범인. 하등의 죄책감 없이 자신은 신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며 용서를 구하지도, 미안해하는 것도 없던 웅변 학원 원장 앞에서, 절망감과 분노로 무너지고 절규하던 신애의 장면이 떠오른다. 피해자는 상실과 그리움의 지옥 속에서 죽어가고 있건만.

인간은 ‘망각’이라는 양날의 검을 지니고 있다. 좋게도 나쁘게도 해석될 수 있는 그 망각으로 상처는 아물고, 과오는 덮어진다. 그리고 어떤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새살로 돋아나기도 하고, 제대로 도려내지 못해 여전히 곪고 있기도 하다.

박노해의 ‘구멍 뚫린 잎’에서처럼 정신의 뼈대가 튼튼하다면 그 상처로 빛이 통과하겠지만, 자신마저 잃은 이는 요즘 세상에는 동정조차 어려울 것 같다. 박노해는 그런 사람을 동정할 순 있어도 사랑할 순 없다 했지만, 그 사람의 내밀한 사연을 우리가 읽어줄 처지가 안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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