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우리는 화기애애하면 안 된다.

by 이봄

대략 10년 전 이야기.


난 시부모님과 10년간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



오래간만에 한가롭고 평화로운 일요일이었다.


베이비시터 이모님은 휴일이라 집으로 가셨고,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 갑자기 근처 대형마트에 가서 밥을 먹고 쇼핑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한숨을 팍팍 쉬며 아침 식사를 준비하시려는 시어머니를 보았다.


“아이고, 뭐 먹지, 아이고, 아이고...”

“어머니, 오늘은 나가서 먹어요!”

“어디?”

“앞에 마트 가서 샌드위치랑 커피로 때우죠. 제가 아버지께도 말씀드릴게요”

“아이고, 그래라. 그렇지 않아도 허리가 너무 아파서...”


시어머니는 모처럼 밝은 얼굴을 하셨고 난 외출을 제안하러 시아버지 방으로 갔다. 우리 시아버지는 아침으로 빵을 못 드시는 분이다. 밥에 물을 부어서라도 반드시 '밥'을 드셔야 하는 분이신데 빵을 먹자고 하니 좋아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일하는 며느리가 유일하게 쉬는 일요일에 외식 제안을 하니 거부하기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 근처 대형 마트 내에는 간이음식점도 있어서 간단하게 피자 조각이나 스파게티 등을 저렴한 가격에 테이크 아웃해서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난 그날따라 시장바닥 같은 데서 정신없니 식사를 하기 싫었다. 브런치 카페 까지는 아니더라도 편하게 앉아서 아침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2층에 스타벅스가 눈에 띄었다.



뜨거운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켜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시작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그날따라 두 아이들도 조용히 뽀로로 만화영화를 보면서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무엇보다 시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셨다.


“에미야, 여기 생각보다 괜찮구나. 샌드위치도 괜찮고 커피도 맛있다. 하하하! 가끔 나와서 먹으면 좋겠구나”

“아버님, 다행이네요. 호호호… 난 아버지가 워낙 밥과 국이 없으면 식사를 못하시니까 걱정했어요.”


남편도 웃으며 나의 선택이 탁월했다고 칭찬해 준다.


“자기야, 가끔 이런데 와서 먹으면 어머니도 편하고 자기도 좋겠네.”

“응, 호호호호호호…”


우리 가족은 일요일 정오를 함께 즐기고 있었다.


'시부모님이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한편으로는 죄송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래, 비록 직접 육아에 참여는 하지 않지만 문화가 다른 조선족 이모님이랑 하루 종일 부대끼면서 사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고, 아이 둘이 싸우고 매일 울어대 베이비시터 이모님이 쩔쩔매면 누구라도 나서서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안고 달래 줘야 한다. 두 분이서 조용히 사시다가 객식구가 늘어나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이다. 시어머니에게 가끔씩 살갑게 감사함도 표현 못한 이 며느리에게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그런데, 그때! 모두가 즐거워하는 바로 그때! 시어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얘들아, 마침 다 모였으니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아니, 우리는 오래간만에 아주 행복하게 여유롭게 브런치를 즐기고 있는데, 이때 왜 시어머니는 갑자기 우는 소리로 우리에게 ‘또’ 긴히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일까? 우리 가족은 시어머니가 '긴히...'란 단어만 꺼내도 경기를 일으킨다. 왜냐하면 늘 그 끝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시아버지는 “집에 가서 얘기해.”라고 어머니께 말씀하셨지만 시어머니는 또 그 “아니, 그게 아니라…”를 반복 하시면서 언성을 높이셨다. 시아버지는 다시 “그냥 별 얘기가 아니면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여보.”라고 재차 눈치를 주신다.


시어머니는 “아니, 지금 얘기해야 돼... 흑흑흑…”하고 울면서 말을 이어간다. 보다 못한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달랜다.


"엄마, 일단 여기서 밥을 먹고 집에 가서 이야기해요. 집에 가서 이야기 다 들을게요."

"아니, 난 여기서 이야기해야 돼... 흑흑흑"

"그게 뭔 이야긴데, 우리 즐거운 시간을 깰 만큼 중요해?"

"아니, 베이비시터 이모가 요즘 일을......"

"그러니까 그만하시라고요... 집에 가서 얘기하자고!"

"집에 가면 너희들 또 쉰다고, 누워 있는다고 다음에 하자고..."

"엄마! 그만해요! 제발! 고집 좀 그만 피우시고요!"

"넌 내가 뭔 고집을 피운다고 그래?"

"하! 진짜..."


이내 우리 테이블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시어머니는 뭔가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계속 울면서 소리를 지르셨고, 시아버지는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고함을 질렀다.


어른들이 울고 불고, 고함을 질러대니 아이들은 그 옆에서 무서웠는지 따라 운다. 우리 시부모님은 옛날 분 들 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울어도 싸움을 끝내지 않는다. 이쯤 되면 나도 화가 나서 한마디 한다.


“어머니, 모처럼 밖에 나와 밥 먹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꼭! 이야기를 하셔야 돼요? 도대체 뭔 얘긴데, 지금 당장! 여기서! 그 이야기를 해야 하냐고요? 도대체 긴히 할 얘기가 뭐예요? 아, 진짜 미치겠어요!


“아니, 나는 너희들이 맨날 피곤에 쩔어 귀가해서 제대로 이야기를 못하잖냐? 그러니까 내가 오늘 이야기하자고 하는 거야!”

“도대체, 도대체 뭔 이야기예요? 가족들 평화로운 시간 다 깨부수고 할 얘기가 도대체 뭐예요?"

“아니… 난 그저… 흑흑흑…” 시어머니는 펑펑 우신다.


다른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웅성거리고 급기야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직원 한 명이 우리 테이블로 오더니 나가달라고 정중히 말한다.


“죄송하지만 다른 손님들이 계셔서요… 나가서 이야기하셔야 될 것 같아요. "


결국 우리 가족 모두 스타벅스에서 쫓겨났다. 아이 둘은 계속 울어대고 쫓겨난 커피 전문점 앞에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계속 소리를 지르며 싸우신다.


아귀다툼이 된 그곳에서 쇼핑하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본다. 이 창피함은 누구의 몫인가.



이때, 남편은 내 손을 잡고 도망가듯이 주차장 쪽으로 뛰어 내려갔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아이들도 따라 뛰었다.



난 기가 막혔다. 유일하게 쉬는 날인 일요일, 심신이 지쳐 있을 시부모님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을 뿐인데, 상황은 꼬일 대로 꼬여서 브런치 먹던 카페에서 쫓겨나고 대형마트에서도 시부모님이 난동을 피워 진상고객이 되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오는 남편의 얼굴은 마치 낭떠러지로 차를 몰고 모든 걸 끝장 낼, 결심을 한 자의 표정처럼 미동도 없고 비장했다. 더럭 겁이 났다. '혹시 욱하는 마음에 차를 몰고 과속을 하다 어디 가드레일이라도 박아 우리가 다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잘못은 어머니가 했는데...


그 순간 시어머니가 뒷좌석에서 또 볼멘소리를 하신다.


“아이고, 내가 빨리 죽어야지… 죽어야지!... 흑흑흑"


지금 이 순간 남편은 운전을 하고 있고 난 조수석, 뒷죄석엔 시아버지, 시어머니, 그리고 아이 둘이 그 사이에 앉아있다.


"그냥 난 너희들과 이야기를..."

"그만해! 엄마!"

"아니, 나는... 그냥... 나는... 그냥"

"그만하시라고요! 엄! 마!"


그 상황에서 "에이, 진짜 내가 먼저 죽든지 해야지!" 하고 시아버지는 차에서 내리신다. '아니, 여기가 어디라고 아버지가 내리시나?'

이제 4차선 도로에서 막 유턴을 해야 하는데 차가 잠시 멈춘 그 사이에 시아버지가 내리셨다. 그리고 무단횡단을 해 버스 정류장 쪽으로 뛰어가신다. 그래도 시어머니는 놀라지도 않고 계속 우신다.

계속 “아니, 나는 그냥"을 반복하신다.


그때 갑자기 남편은 ”아악!... 아악!... 아악!.. 엄마! 조용히 해… 원하는 대로 다 같이 죽자고! 죽자고!”하고 소리를 지른다. 손으로는 운전을 하며 맹수가 포효하는 소리를 지른다. 난 얼음이 돼 꼼짝할 수가 없다. 시어머니는 울고 남편은 결혼하고 처음 듣는 괴성을 지르며 다 같이 죽자고 운전을 갈지자로 해대고 아이들은 그 사이에서 소리 높여 울부짖는다. 두 번째 아수라장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게 남편은 다 같이 죽자고 괴성을 질러댔고 난 아이들만 데리고 내리고 싶은데 4차선 도로라 그럴 수가 없다. 아, 이때는 이 방법 밖에 없다. 제발 이 방법으로 해결되길 하나님께 기도한다. 남편의 어깨를 잡고 "그만 진정해...제발 진정해. 애들이 놀라잖아."라고 말하는 건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 내가 이대로 아이들과 죽는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차라리 나라를 위해서 전장에 나가 싸우다 죽으면 훈장이라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건 개죽음이다. 시어머니가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우는 소라를 하는 게 아들 입장에선 듣기 어려운 일일게다. 그렇다고 우리까지 다 같이 죽자고 하다니?



그날 교통사고 없이 무사하 집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그날 저녁에 베이비시터 이모님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이들을 맡기고 바로 외출했다. 그리고 남편과 난 근처 포장마차에 가서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렇게 우리의 몸을 술로 짓밟은 뒤 실신하듯이 잠에 빠져 들었다.


내일 새벽에 매장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것이 일상이다. 우리가 새벽부터 밤까지 나가서 일을 하건 말건 우리의 싸움은 시작되고 계속된다. 서로에게 득이 될 게 없는 소모적인 전쟁이 한 가정에서 매일 벌어지다니… 그렇지 않아도 나가면 전쟁터인데 집에서라도 평안과 안식을 가져야 하는데 퇴근만 하고 돌아오면 2차 대전을 겪고 그 스트레스를 술로 풀고, 다음 날 숙취로 지쳐 정상적인 출근을 하기도 어려운 지경이 된다. 악순환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바로 분가도 못하는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를 위해서라도 헤어져 사는 게 맞는데 당장 해결할 방도가 없다. 백 년도 못 사는데 천 년을 살 것처럼 지지고 볶고 살고 있다.


시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던 나의 노력은 도로 운전 중에 온 가족이 괴성을 질러대며 극도의 흥분을 하는 바람에 죽음으로 끝날 뻔했다. 남편도 중간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다 같이 죽자고 했겠지만 난 몸과 마음 전부 만신창이가 돼 너덜너덜...




다음날 이른 새벽, 시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아침 식사를 맛있게 드시고 교회 예배를 가셨다.



'가족들이 기분 좋을 때 내 부탁을 이야기해야 다 들어주겠지?...액션!'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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