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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그분, 연기가 무르익다!

시어머니의 연기력은 일취월장!

by 이봄

나는 13년간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략 10년 전 이야기.


어느 날, 아침부터 누가 내 방문을 두드려 열어보니 시어머니가 팔짱을 끼고 심란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 무슨 일이세요?"

"잠깐 얘기 좀 하자..."

"어머니, 저 조금만 더 누워있다 나갈게요."

"아니, 급한 일이다..."

"30분만 더 쉬고 나갈게요."

"아니, 안 돼. 지금 얘기해야 돼.. 중요한 일이다!"

"아니, 어머니! 제가 어디 가요? 좀만 쉬었다 말씀 들을게요!"

"베이비시터 이모님을 빨리 바꿔야 돼서 그런다."

"알아요! 어제도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시간이 필요해요!"

"아니, 아이들한테 조선족 사투리를 가르쳐서..."


여기서 더 언쟁을 벌이다가는 크게 싸울 것 같았다. 우리 시어머니는 뭔가 하나에 꽂히면 하루 종일 꿈속에서도 그것만 생각하는 분이다. 요즘에는 베이비시터 이모님한테 꽂히신 모양이다. 다시 방문을 닫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대화를 하다 말고 왜 다시 들어가냐며 내 소맷자락을 붙잡고 잡아 끌어당겼다.


내 팔을 잡고 못 들어가게 하려는 시어머니의 손을 계속 피하고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그 찰나에 갑자기 시어머니가 ‘어머, 어머!”소리를 내며 냅다 바닥으로 쓰러지신다. 유도에서 낙법 하듯이.

마침 거실 소파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남편이 이 장면을 생생히 목격했다. 내가 시어머니의 몸에 손을 댄 적이 없다는 것을 남편이, 그분의 아드님이 목격한 것이다.


" 어머, 어머나! 아악... 얘가 날 치네? 사람을 치네? 날 때리네!"

"... 어머니, 왜, 그러세요?" 난 현실 인지가 불가능해졌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분이 왜 이러시나...


딴 방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던 시아버지와 아이들까지 뛰쳐나와 이 상황을 보았다. 시어머니는 바닥에 쓰러진 체로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고, 마치 10층에서 떨어진 사람처럼 거동을 못 하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나에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라고 언성을 높여 재차 물었다.


'제가 어떻게 알아요?'


매일 계속되는 이 전쟁이 도대체 언제쯤 끝날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계속되는 시어머니의 거짓말에 지친 나는 핵폭탄급 발언을 하고야 말았다.


“어머니, 어서 일어나세요! 아버지가 지금, 제가 어머니를 때린 줄 알잖아요! 계속 가족 앞에서 이런 식으로 거짓말하면 어머니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 지금 전화하겠습니다. 목사님 전화번호 주세요. 교회 담임 목사님께 전화해서 어머님의 이중생활을 알리겠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속과 겉이 다른 사람인지! 교회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성도니 등록을 취소해 달라고 연락할 거예요!”


“재… 쟤… 뭐래니…아, 아악…아아악!”


시어머니는 괴성을 지르며 온몸을 들썩거렸다.

시아버지가 남편에게,


“장군아! 빨리 119에 전화해라… 빨리 엄마를 업고 병원 응급실에 가든가… 어서!”

"아버지, 기다려 봐요. 엄마 괜찮아요. 혼자 넘어지신 거예요. 제가 다 봤어요!"


쓰러진 척 연기를 하던 시어머니는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기침을 하시며

“물… 물… 좀 다오.” 하신다.


시어머니에게 목사님이란 어떤 존재인가. 백 명이 와서 대화를 해도 시어머님은 남의 이야기를 잘 못 듣는다. 유일하게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대상이 있는데 바로 교회 목사님이다.

나의 목사님 발언이 시어머니의 폐부를 찌른 걸까?


시어머니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휘청거리며 방으로 걸어갔다.


잠시 뒤에 역시나 울음 섞인 비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든 것처럼 들린다.


"흑흑흑... 내가 무슨 죄를 져서 이 꼴을 당하나... 며느리도 날 무시하고 남편도 날 무시하고 아들도 날 무시하고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느냐... 흑흑흑... 에미야... 도대체 날 왜.. 왜... 헉... 헉... 컥"


나야말로 묻고 싶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냐고요?


10년간 어머님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저 가슴 깊숙한 곳에서 꿈틀거린다.


' 난 쟤가 너무 싫어.. 근데 아들 앞에서는 사랑하는 척해야 하니까 그것도 늘 힘드네... 아휴, '라고 시어머니가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빠질 테니 셋이 사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어렸을 때 유치원은 다녔으나 기억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런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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