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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짐은 빨리 죽고 싶다!

by 이봄

난 10년간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날, 파바로티의 'Nessun Dorma'가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금은 남편이 결혼하고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제대로 된 취미생활을 못하지만, 결혼 전에는 비혼주의자였는지 자기 취미에 많은 돈을 소비했다고 한다. 그 취미는 바로 클래식 감상과 오디오! 그래서 우리 수준하고 안 맞는 멋진 퀄리티의 오디오가 거실 한편에 있어서 종종 예전에 수집했던 앨범으로 음악을 들었다.


창 밖에서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밖에서는 또 사고가 났는지 엠블란스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이렇게 날씨가 안 좋으면 시어머니의 디스크 증세가 더 심해지는지 그녀는 내 방으로 와서 “… 얘, 시간 있니? 할 얘기가 있어…아, 아악… 통증이 심해서…” 그러면 난 “네, 앉으세요.”하고 의자를 내어 준다.

“ 무슨 말씀을 또 하시려고요?”


시어머니는 특유의 울음기 섞인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신다.


“저기, 연명 치료 있잖니? 난 그거 안 하려고 해… 혹시 내가 위중한 상태가 되면… 흑흑흑… 연명 치료는 하지 말거라. 난 이 세상에 미련이 없다. 내가 오래 살아봤자 뭐 하니… 너희들한테 피해나 주고… 마음 같아서는 하나님이 나를 빨리 데려갔으면 좋겠어... 빨리 죽.. 고.. 싶.. 어…흐흐흑….”

“어머니, 날씨도 우중충해서 저도 마음이 좀... 그런데 갑자기 오셔서 죽고 싶다니요? 아, 운동이나 다녀오세요.”


시어머니는 빨리 죽고 싶다고… 살 만큼 살아서 미련이 없다고 하셨다. 월 1회 정도 ‘장기 기증’과 ‘연명 치료 거부’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나는 ‘알겠어요.’라고 답해 주었다.




우리 집 앞에는 꽤 큰 병원 건물이 있었다. 1층에는 스타벅스와 약국, 2층에는 산부인과, 그리고 3층은 안과, 4층은 내과와 소아과, 5층은 한의원, 이렇게 구성되어 있어 매우 편리했다. 아이들 키우는 가정은 병원이 가까이 있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돼 이 부분에서는 정말 만족하고 살았던 것 같다.


어느 날, 피로가 누적이 됐는지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어 일찍 일을 마무리하고 집 근처 내과에 가보기로 했다. 예약도 안 되는 내과라 바로 가서 진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의사가 피검사를 권유해서 채혈을 하고 결과는 문자메시지로 주겠다고 해서 생각보다 빨리 병원에서 나왔다.


4층 내과 앞에서 5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타려는데, ‘앗! 시어머니네?’ 시어머니는 내렸고, 난 타야 했지만, 엘리베이터를 그냥 내려보내고 타지 않았다.


“어머니, 5층 한의원 갔다 오시는 길이에요?”

“.. 응, 너도 병원 왔구나..."

“어머니, 저랑 집에 같이 가네요?”

“저기, 나... 여기 내과도 가 봐야 해서.. 요즘 머리가 좀 아파서 처방 좀 받으려고…”

“그래요? 그럼 기다릴게요.”

“… 아니다… 먼저 가라…”

“왜요? 같이 가요.”

“저기, 나... 3층 안과에도 예약을 해봤어… 눈이 너무 아파서 처방받으려고…”

“네???"


그러니까 그날, 어머니는 5층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4층 내과에서 두통 관련하여 처방을 받고, 3층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는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계셨던 것이다. 디스크 외엔 특별히 위중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러한 시어머니의 빡빡한 병원 스케줄은 10년간 이어져 왔다.


하루빨리 죽고 싶다고 하시더니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온갖 병원을 잘 다니고 약도 부지런히 챙겨 드셨다.

그날 이후로 '연명 치료 거부'이야기만 나오면 난 밖으로 나갔다.




" 의사 선생님, 저 120살까지 살 수 있을까요?"

" 어휴, 욕심도 많으시네요? 뭐, 100살까지는 제가 장담할 수 있네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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