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년간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대략 8년 전 이야기.
매장은 좋지 않은 상권에 있었음에도 고객들로 인산인해였다.
가게가 건물 뒤편에 숨어 있는 형상이라 손님들은 매장 바로 앞에서도 전화를 했었다. ‘거기 어떻게 찾아가요?’ 간판도 잘 안 보였던 것이다.
인생에 한 번쯤은 성공의 기회가 온다고 하는데 나도 과연 그런 기회를 잡은 것이었을까? 한국에서 연습 삼아 운영을 해 본 후, 자영업 경쟁이 포화상태인 한국을 피해 이 메뉴를 유럽에 가져가 스몰 비즈니스로 이어갈 생각이었는데 여기서 덜컥 대박이 나서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집에 있는 베이비시터 이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에서 뜬금없이 이런 전화가 오면 잠시 숨을 고른 후 통화 버튼을 눌러야 한다. 늘 나의 집은 사건, 사고로 가득 차 있었으므로.
의도적으로 마음을 토닥거리고 안정시킨 후에야 받는 연락이다.
“ 딸기 엄마, 딸기 엄마! 큰일 났어! 큰일 났어!”
“왜요? 무슨 일이에요?”
“저기, 딸기가 아침부터 계속 토해, 계속 토해… 어떻게 해요?”
“ 네? 뭐 잘 못 먹었어요?”
베이비시터 이모님은 같은 말을 반복하며 어떻게 하냐고 나에게 물었다.
“이모님, 진정하시고 천천히 얘기하세요”
“끓인 밥하고 고기 구워 잘게 썰어준 것 빼고는…”
“어머님이랑 병원 가보셔야겠네요. 우리 다니는 소아과에 데리고 가세요’”
“딸기 할머니요?...”
“네, 어머니랑 같이 가세요!”
이모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조선족 분이라서 혼자 아기 데리고 병원 가는 걸 두려워했다. 자기가 의사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떻게 하냐고 불안해했다. 항상 집에 계신 시부모님이나 우리 부부가 따라가야 했다.
“딸기 엄마! 딸기 할머니는… 안 계세요.”
“집에 없어요? 외출하셨어요?”
“네네, 집에 아무도 없어요! 할아버지도 없어요!”
“……”
이 상황에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걱정이 된 남편과 나는 차를 타고 서울에서 용인까지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어린 아기가 아침부터 구토를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는데 난 가슴이 떨려 왔다. 이 엄마가 옆에 없어서 자주 아픈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아침에 멀쩡히 집에 계시던 시어머니는 또 어디로 가신 것일까?
집에 도착해 보니 아기의 토사물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고 이모님이 축 늘어진 아기를 안고 어찌할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딸기 엄마, 나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고생하셨어요…그런데 어머니 연락 없어요? 제 전화도 못 받으시던데요?”
“딸기 할머니 연락 안 될 거예요.”
“왜요? 아까부터 연락이 안 되더라고요?”
“저기…”
“이모님, 얘기해봐요!”
“아! 몰라요! 아기 토하는 거 보자마자 이것저것 세면도구 챙기시더니 짐을 싸서 나가버리시더라고… 못 보겠다나, 안 보겠다나…아휴, 뭐라 하셨는지 잘 기억도 안 나네요.”
근처 소아로과 뛰어가는 중에도 아기는 남편의 어깨 위에 계속 토했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소아과에서는 일단 응급조치를 해줄 테니 일단 오늘 밤까지 기다렸다가 내일도 상태가 안 좋으면 그때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보자 했다. 일단 위기는 넘긴 느낌이었다.
그날 아기를 데려와 침대에 눕히니 시아버지가 오셨다. 난 아이가 아파 위급한 상황에 시어머니가 짐을 싸 가지고 어디론가 가셨다고 했더니 시아버지는 “ 걱정 마라, 정숙이네(남편의 여동생) 갔어. 갑자기 몸이 아파서 아무래도 걔네 집에서 요양 좀 해야 될 것 같다고 당분간 연락하지 말아라,에헤, 참…”라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우리 부부는 최근에 법인 설립을 시작하면서 매장도 운영하는 아주 복잡하고 정신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 사업에 대해 시부모님께 말씀드렸고 신혼 초에 시부모님은 우리가 매우 바쁠 것이니 아기를 돌봐 주겠다고 먼저 제안했고 난 받아들였고 그 결과, 합가를 하게 돼 경제 공동체가 되었다.
아이 둘을 베이비시터에게 맡겨 놓고 브랜드 하나 만들겠다고 일에 미쳐 식사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뛰어다니는 시점에 아기가 아프다고 해 집에 갔더니 시모가 짐을 싸서 도망가 버렸다. 정확히 3일 뒤 아기의 병이 호전되자 다시 집에 들어오셨다.
“미안하다, 그 구토하는 아기를 보는데 너무 괴롭더라고… 아기의 힘든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몸이 너무 아파서 너희들한테 말도 못 하고 정숙이네 갔어, 요양 좀 하려고… 미안하다. 내가 몸이 너무 아파 아기를 못 돌봐서… 흑흑흑 너무 사랑하는, 사.. 랑.. 하.. 는 너무 예쁜 우리 손녀, 미안해, 그리고 늘 고생만 하는 며늘아… 미안하다…”
영유아 손녀가 토하자마자 도망가시는 할머니가 내 시어머니라니...
도망가는 할머니는 생각했다.
'쟤는 왜 아침부터 토하냐, 보기 힘드네. 아휴, 우선 내 몸이 더 중요하니 딸네 쉬러 가자. 빨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