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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눈이 내리고, 시어머니는 뛰고

by 이봄

나는 결혼 후, 10년간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대략 8년 전 이야기.


우리 가족은 당시 대가족으로 시부모님, 어린 아가 둘, 우리 부부, 베이비시터 이모님, 이렇게 7명이 한 집에 살았다.


베이비시터 이모님은 토요일 오후에 이모님 집으로 가서 쉬고 다음 날 일요일에 아기 돌보는 업무에 복귀하는 스케줄이어서 우리 부부는 토요일 오후부터는 아기를 직접 돌봐야 했다. 그러나 주말에도 타 지역 출장이나 미팅이 있는 경우가 있어 월 1~2회, 심하면 주말마다 친정어머니가 오셔서 아기를 돌봐 주셨다.


시어머니는 허리디스크가 악화돼 아기를 돌볼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바 있고, 잘 걷지도 못했고 오래 앉지도, 서 있지도 못했다. 시아버지도 2~3시간은 돌봐 주셨지만 재우고 먹이고 하는 것은 힘들어하셨다.


친정어머니는 당신 자식인 나보다도 내 아이들을 사랑했다. 기꺼이 서울에서 용인까지 아기들을 돌봐주러 왔다. 토요일 오후에 오셔서 아기들을 먹이고 데리고 잤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 서울 본가로 돌아가셨다. 나보다 내 아이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친모는 당시 암환자였다. 당시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항암 부작용으로 다리 한쪽이 코끼리 다리처럼 부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많았다. 그러나 내 아이들을 너무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했다. 왜 그랬을까... 당신의 의지로 아기들을 보러 왔기 때문에 사돈댁이지만 불편해하지 않고 아기에게 집중하며 편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시부모님도 당신들이 할 수 없는 부분을 나의 친모가 채워주니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베이비시터 이모님은 나의 시어머니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 딸기 할머니는 할아버지랑 딸기 아빠만 집에서 나가면 아프다는 말을 잘 안 해요. 실제로 걷는 거나 요리하시는 거나 정상인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하시는 것 같아요. 어쩔 때는 저보다도 체력이 좋으신 것 같아요.”

“… 디스크라는 게 하루종일 통증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뭐.”


이모님 생각으로는 시어머니가 매일 통곡을 할 정도로 아픈 것 같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글쎄, 두고 볼 일이다.




하얀 눈이 펑펑 내렸다. 기온이 떨어져 빙판 길에 여러 사고가 우려된다고 뉴스에서 난리가 났다. 특히 노인이나 지병이 있는 분들은 외출을 자제하라고 했다.


마침 친정어머니가 방문하는 날이다.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손자, 손녀가 보고 싶다고 거북이걸음으로 오시는데 빙판 길에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오셔야 되는데 걱정이 되었다. 괜히 베란다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도착하면 바로 나가야지.' 난 약속을 잡아두어 친정어머니가 도착하면 바로 나가 일을 해야 했다.


“띵동~”

친정어머니가 도착했다.

“어이구, 우리 아기들, 잘 있었냐? 호호”

“할머니! 할머니!”

아이들도 각 방에서 기어 오고 뛰어오고 반갑다고 달려든다.

“엄마, 녹차 한 잔 주고 난 나가볼게.”

“그래 , 근데 네 시어머니 방금 나가셨지?”

“응, 10분 더 된 것 같은데? 왜?”

“아니, 내가 지하철역에서 나와 여기 아파트 쪽으로 빙판길이라 조심조심 걸어오는데 누가 막 뛰어가더라고…웬 노인이 말이야, 참 건강하기도 하지, 부러워 쳐다봤더니 너희 시어머니더라고?”

“우리 시어머니?”

“그래! 내가 너희 시어머니 얼굴을 모르냐? 근데 그새 건강해지신 거니? 그렇게 빙판 길에 뛰어다니시게?”


친정어머니의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날 밤 남편에게 밖에서 맥주 한 잔 하고 들어가지고 했다. 조심스럽게 아까 낮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뭐? 우리 엄마가 빙판길에서 뛰어다니신다고?”


혹시 친정어머니의 시력이 안 좋아 착각하신 건가? 그렇게 믿고 싶었다.






눈길을 걸으며 할머니는 콧노래를 불렀다.

'아! 눈이 너무 예쁘다... 랄라라~눈이~ 나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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