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결혼 후 10년간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8년 전 이야기.
여러 사업 진행과 매장 운영으로 늘 바빴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나는 유난히 몸과 마음이 힘든 날은 시원한 맥주를 더 찾았다. 남편은 총각 시절, 독일과 폴란드에서 엔지니어로 일할 때 온갖 맥주에 대해 섭렵했고 난 결혼 전 영국에서 살 때 영국과 아일랜드 맥주를 허리춤에 달고 살았다. 현재는 노쇠해서 불가능하지만…
구질구질하게 살수록 최소한의 낭만감을 유지해야 하루를 무사히 버틸 수 있었다. 나의 낭만은 경제적 문제, 복잡한 인간관계 그리고 지병 같은 현실 문제를 잠시 뒤로 하고, 지인과 음악을 들으며 맥주 한 잔 하며 이런저런 감상과 서로의 이상에 대해 나누는 것을 의미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현실 문제를 어떻게 타개할지 로드맵이 희미하게라도 나왔다. 더불어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매우 즐겨했다.
한여름이었던 것 같다.
‘여름은 역시 시원한 생맥주!’ 하면서 집 앞에 치킨을 파는 맥주 집으로 갔다. 날씨가 더워 사람이 많아 '자리가 있을까' 걱정하면서 들어갔다. 치킨 한 마리와 생맥주를 시킨 후,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해프닝과 내 감정을 전달했다. 그는 ‘응, 응, 그래.’ 하면서 먹기만 했다.
그래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워킹맘’이라고 말로만 들었지 직접 겪어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높은 자존감과 근거 없는 자신감이 병적으로 충만한 나도 가끔 도망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 버리고 도망치고 싶을 때… 아이가 둘에, 시부모님에, 베이비시터 이모님의 기분까지 관리해야 했다.
남편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면 잊을 건 잊고, 되새길 건 되새기고 그날 일을 정리하면서 마무리하게 된다. 최소한의 낭만적인 행위를 한 뒤 남편과 터덜터덜... 술기운에 심신을 잠시 맡기고, 오늘 있었던 안 좋은 생각들을 지워버리며 집으로 향했다.
대략 밤 11시경 집으로 가는 길, 아파트 입구를 지나 단지 내로 들어갔다.
이제 한 블록만 더 가면 내가 사는 111동이었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조심해야 했다. 가끔 단지 내에서도 심심찮게 레이스를 벌이는 차량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난 교통사고의 피해자로 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안전’ 문제에 매우 예민한 편이었다. 차가 몇 대 다니길래, 길 옆으로 가서 조심조심 걷고 있는데 왼쪽에서 차량 한 대가 라이트를 켜고 서서히 운행하며 따라왔다. 그런데 오른쪽에서 한 사람이 그 차를 향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오는 데 피하지도 않았다.
나와 남편은 너무 놀라서 “저기요! 저기요! 이쪽으로 오세요! 그쪽으로 가시면 안돼요! 안돼요!”라고 말하며 그 사람한테 다가가는데...
그 사람은 시어머니! ‘아니, 시어머니가 아닐 거야!’ 난 우기고 싶었다.
‘아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심지어 시어머니 옆에는 아까는 안 보였던 내 아들! 기저귀만 차고 옷은 하나도 안 입은 세 살 배기 내 아들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시어머니의 눈은 초점이 없었고 계속 “너무 더워서, 너무 더워서… 너무 더워서.”라고 혼잣말을 반복 또 반복했다.
나는 갑자기 반미치광이가 되어 “어머니, 왜 이러고 다녀요? 아기는 왜 데리고 나와요? 위험하게! 위험하게! 위험하게! 위험하게! 위험하게! 죽으려면 어머니만 죽으라고요! 아!...”라고 말했지만 시어머니는 계속 “너무 더워서… 흐...흐...”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다행히 사고는 안 났지만 머리가 너무 아파 눈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누구인가? 그녀의 정체는?
내가 아기를 번쩍 안자마자, 남편은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우리가 걸어왔던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점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해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이때부터 최소한의 낭만도 사치가 되었다.
나를, 나의 현재를, 나의 미래를 흔드네? 가만히 있지 않겠다!
그리고 다 싫다... 그녀가... 또 한때 지독하게 사랑했던 그가... 전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