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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가출해서 모텔 가는 40대 며느리

by 이봄


나는 결혼 후 10년간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8년 전 이야기.


표면적으로 시어머니의 이상행동들이 하나, 둘 늘어나자 아이가 둘이나 있었기 때문에 '안전' 관련해서 매우 불안해졌다. 사업도 확장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인데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어 사람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일요일은 원래 우리 부부가 쉬는 날이어서 주로 아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집에 있으면 시부모님이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챙겨주려고 했다. 그날은 시부모님, 두 분만의 시간을 가지고 밖에 나가서 데이트도 하시라고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친정에서 일부러 밤늦은 시간까지 있었다. '집에 일찍 들어가 봤자 시어머니와 부딪힐 테니.' 일요일 밤은 조용히 보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니 많이 먹고, 마시고, 놀고, 쉬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밤 10시경, 집으로 출발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비가 갑자기 후드득 떨어졌다.


까만 밤, 비가 내렸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어졌다. 강한 바람도 불었다. 일기예보를 미리 확인을 못해서 날벼락이었다. 서울에서 용인 집까지 가야 하는데 일요일 밤에 이 악천후 속을 뚫고 달려야 하다니… 우리 부부만 있으면 어떤 날씨건 상관없는데 3살, 5살짜리 아기 둘을 데리고 가려니 살짝 걱정이 되었다.



친정 집 근처에 유흥가를 지나서 고속도로를 타야 했다. 우리 차가 천천히 술집이 가득한 유흥가 사이 골목을 지나는데 갑자기 누가 우리 앞을 막았다.


"헉, 뭐야?...” 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과 난 뒷 좌석에 있었고, 남편이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천천히 이동 중인 우리 차 앞을 막은 것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우산도 안 쓰고 후드티를 입은 체 실실 웃으며 서 있었다. 남편은 창문을 조금 내리고 “저기요? 비켜주세요!”라고 부탁했는데도 그는 그 자리에서 버티고 비켜주지 않았다. 우리 뒤에도 차들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빵빵’ 거리고… 골목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저 놈이 안 비키고 뭐 하는 거야?” 남편이 화가 나서 차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하지 마! 조금만 기다려봐!”라고 난 말했다. 왜냐하면 혹시 저 남자가 깡패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아기들은 어쩌고? “아… 남편아! 기다려봐."


몇 초간의 시선 교환 끝에 그 남자가 옆으로 물러섰다.


다행히 그 남자는 술에 취해 우리를 못 알아보고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 같았다.


“휴, 너무 놀랐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다치면 어쩌려고?” 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니, 일요일 밤에 뭔 술을 미친 듯이 먹고 난리야? 잠도 안 자고...” 남편은 더 화가 난 듯싶었다. 이런 날씨에 아가들을 데리고 운전하려니 긴장이 되어 더 신경이 곤두섰을 것이다.





그야말로 전쟁 같은 난리를 겪고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었다.

빗속에 주차하느라 우리의 옷은 젖어 있었고 나는 둘째를 업고 남편은 자고 있는 첫째를 안고...


“다녀왔습니다.”하고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칼날 같은 질책이 쏟아졌다.


“얘! 에미야! 너는 정신이 있니? 없니? 지금이 몇 시인데 애들을 데리고 지금 오는 거니? 애들이 자야 할 시간이 넘었어! 늦게 자면 제대로 못 자서 칭얼거리는 거 모르니? 너는 엄마가 돼가지고 야밤에 어디를 쏘다니는 거냐? 그냥 에미, 니가 방랑기가 있어가지고! 애들 이리 내놔! 아줌마, 애들 데리고 방에 가서 재워주세요.”


갑자기 난 눈에 뵈는 게 없어서


“어머니! 지금 뭐라신 거예요? 여기 현관문 앞이에요! 전 신발도 못 벗었다고요! 어머니랑 아버지 편하게 시간 보내시라고 일부러 친정집에 있다가 늦게 왔더니 뭐라고요? 아! 진짜! 돌아 버리겠네!”


난 현관 앞에서 다시 문밖으로 뛰어나왔다. 남편이 따라왔다.


차를 타고 옆 동네 유흥가로 갔다. 호프집에서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남편에게 말했다.


“나 오늘 집에 안 들어가. 당신이나 들어가. 생각할 게 있어. 생각할 게 아주 많아.”

“몰라, 나도 안 들어갈래.”


그 호프집 앞에 모텔이 있었다. ‘저기서 자고 내일 출근을 해야겠다.’

시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



방랑기가 있다는 어머님 말씀은 맞는가 보다.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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