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일 났어! 엄마가 또 쓰러져서 병원 왔어.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와. 저녁 6시부터 7시까지 1시간만 면회 가능해!”
“ 알았어, 그 시간 맞춰서 갈게, 좀 있다 봐.”
친정어머니와 살고 있는 남동생의 다급한 전화였다,
친정어머니는 60대부터 암투병을 했고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에 완치 판정을 받았었다. 그런데 최근에 면역력이 약해졌고, 이름도 긴 위험한 세균에 감염이 돼 척수염으로 하반신까지 마비되었다. 그 이후 완치 판정을 받았던 암이 폐로 전이되어 13년 만에 암 재발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친정집은 암과의 사투로 검은 구름 아래 있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보니 친정어머니의 정신도 문제가 생겼으며 어떤 때는 도저히 집에서 요양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빠져 집 근처 요양병원에서 반년을 지내기도 했다.
‘또 무슨 일인지…’
대학로에 위치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뛰어갔다. 이 중환자실은 우리에게 익숙한 곳이다. 너무 자주 가서 나중에는 놀라지도 않게 되었다.
폐암의 관련 유무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고열이 났고, 식사도 못 하고 게다가 사람을 잘 못 알아봐 혼수상태로 실려온 것이다. 의사들은 당장은 원인을 모르겠다며 당분간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밀검사를 해 보겠다고 했다.
남동생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고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여 혼수상태인 친모 면회 후에 남동생과 맥주 한 잔 하러 자리를 옮겼다..
대학로의 ‘비어 오크’ 호프집.
“힘들지?...”
“아휴, 죽겠다, 죽겠어… 내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겠어…”
중증환자를 간병하는 그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한 두 번은 할 것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일반 서민 가정에서는 경제적인 문제도 생기면서 때로는 심리적 한계를 넘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해 보는 날이 오고야 만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빨리 돌아가시는 게 차라리 친모에게 낫지 않을까?’
‘산 사람은 살아야 되는데…’
‘누가 한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 함부로 단언할 수 있을까...’
‘차라리 다 같이 죽는 게 나을까...’
'아, 모르겠다...'
남동생의 등을 두드리며 ‘괜찮을 거야.’라는 말을 건네는 게 전부인, 무력한 나를 보았다.
며칠 후.
하루 종일 시달리다 퇴근하고 집에 와 보니 시어머니가 심란한 얼굴로 식탁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미야…그래…요즘 네 친정어머니 때문에 마음이 힘들지?”
“오래 투병해서 그런지 아직은 무덤덤해요…”
“얘… 나도 네 마음과 사부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아… 흑흑흑…”
시어머니가 울먹이면 난 조금 불안하다.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아휴, 어머니 디스크나 걱정하세요. 맨날 아프다고 죽겠다고 하시면서…”
“얘!”
“네!... 왜요?”
“저기… 내 얼굴에 점 보이니?”
“네? 얼굴에 뭐 하셨어요?” 시어머니의 얼굴에 여기저기 조그만 밴드가 붙어 있었다.
“아니, 내가 점을 뺐어… 아까 병원에서…근데 이것도 얼마나 귀찮고 아픈지… 네 마음을 알겠더라고… 사부인도 얼마나 힘드시겠니?”
“… 저기요… 어머니…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요?”
“…그러니까 이 점 빼는 것도 힘들고 아픈데 사부인은 암 투병으로 얼마나 힘드시겠냐고…”
“지금… 어머니 ‘점’하고… 친정엄마 '암'하고… 어쩌고 저째요?”
“얘, 난 단지…이 점 빼는 것도 힘든데… 암은 더,”
“시끄러워요!!! 아!”
난 눈이 뒤집혔다.
하루 종일 일하고 밤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앉지도 못하고 도로 밖으로 뛰어나와 단지 내 공원 여기저기를 들짐승처럼 배회했다. 청소년기에도 안 하던 가출을 이젠 밥 먹듯이 하게 생겼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 받았다.
난 길 건너편 ‘야끼도리’라는 간판의 일본 선술집에 들어가 생맥주를 2개씩 시켜 5회에 걸쳐 합 10잔을 마셔버렸다.
‘아, 이 놈의 결혼! 어쩐지 연애할 때 달콤하더라…이 다크호스, ‘시어머니'를 생각도 못하고 결혼을 해버렸네…아, 어떻게 하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