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소유권 분쟁
난 10년간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우리 부부의 '이혼 선언'이 있은 후, 시아버지는 ‘몇 달만 시간을 달라’ 했고 난 받아들였다. 어차피 주변 정리를 하지도 못했기에 나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즈음 친정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암이 재발하고 항암치료 5일 만에 영면의 세계로… 면역력이 바닥에 떨어진 상태에서 시작된 항암치료로 그녀는 급사하다시피 저 세상으로 달려갔다. 장례식, 사망신고, 등등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도 여러 절차를 거쳐야 했다.
친정집으로 가 유품을 정리하던 중 거실에 떡하니 놓여 있는 고구마 상자를 보았다. 어머니가 항암 음식으로 자주 드시던 고구마다. 암환자들은 다 알 것이다. 고구마를 생으로 잘라먹거나 삶아 먹는 게 몸에 좋다는 것을…그래서 고인은 홈쇼핑으로 해남산 밤고구마를 즐겨 주문해 드셨다.
‘참, 저 놈의 고구마가 뭐라고… 참…”
뚜껑을 열어보니 고구마가 꽤 많이 남았다.
‘다 드시지도 못하고 뭐가 그리 급해 바삐 가셨을까…’
난 그 고구마 상자를 집으로 가져가 빨리 먹어 치우기로 했다.
유품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그 고구마 상자를 들고 집에 왔다.
‘아무리 친정어머니가 드시던 거라도 오래 가지고 있어 봤자 내 마음이 괴로울 것 같아서 2~3일 안에 다 먹어 치우자는 생각에 그 몇 십 개 되는 고구마를 다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어차피 오래 보관할 게 아니라서 간단히 냉장고에 넣어둔 것이다. 가족들에게도 이 고구마는 내가 친정집에서 가지고 왔으니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말해 두었다.
그날 밤.
가족들이 이른 저녁을 먹고 식탁에서 조용히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야식으로 고구마를 먹어야겠다. 아이들도 주고.’
고구마를 전부 다 삶아버리려고 큰 솥을 꺼내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물을 부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고 씻어 놓은 고구마를 꺼내려고 하는데…
내 자줏빛 영롱한 고구마들이 사라졌다.
난 식탁으로 가서 어머니께 고구마에 대해 물어보았다.
“어머니, 혹시 제 고구마 보셨어요?”라고.
“… 고구마? 그게…” 시어머니는 주저주저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어머니! 고구마 보셨냐고요! 제가 친정에서 가져온 거요!”
“……….”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아이들이 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뭔 고구마?' 이런 표정으로.
“어머니! 고구마! 고구마요!”
“ 아휴, 어쩔 수 없네…에미야, 넌 어찌 그리도 살림이 빵점이냐?”
“네? 네? 네?”
“ 아니, 왜 고구마를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니?”
“ 어머니, 그건 제가 내일까지 다 먹으려고 일부러 냉장고에 …”
“ 얘! 자고로 고구마는 통풍이 잘되는 곳에,”
“ 어머니! 됐고요. 어디 있어요? 지금 삶아야 돼요!”
“ 에미야, 고구마는 그렇게 보관하는 게 아니,”
“ 뭘 보관을 해요? 다 삶아버린다니까요!” 난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아니, 넌 뭘 가르쳐주면 ‘알겠어요.’라고 순종하고 듣질 못하냐?”
“ 여보! 그만해!” 시아버지가 시어머니를 다그친다.
“뭘 그만해요? 에미가 살림을 너무 못해!”
“그만하라고, 그만하라고..” 시아버지는 시어머니를 노려 보았다.
“어머니! 빨리 말해요. 고구마 어딨어요. 빨리 삶아야 돼요!”
“아니, 자고로 고구마는 말이다. 고구마는 원래 신문지에 돌돌,”
"아, 진짜..."
시아버지는 시어머니를 끌고 어머니 방으로 가시는데 난 참을 수 없어서
“빨리 말해요! 아니, 왜 내 고구마 가지고 난리예요? 그거 내 꺼라고요. 어머니 유품 중 하나라고요! 왜! 왜! 왜! 내 고구마를 가지고 이래라저래라 난리예요? 아! 그 소리 듣기 싫어! 저 목소리 듣기 싫어! 저 목소리 듣기 싫어!!!”
난 급기야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공황 상태에 빠졌고 그 모습에 놀랐는지 시어머니는 고구마가 베란다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한 없이 가벼운 존재인 ‘고구마’ 가지고도 가족의 인연이 끊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고구마 많~이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