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이혼 선언 후, 시아버지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셨고 난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모가 영면에 들었다.
친모의 장례식 후에도 시모의 이상한 행동들은 계속되었는데 애도하는 기간이라서 그런지 이를 참기가 어려웠고 우리는 사사건건 부딪혔고 난 가출을 밥 먹듯이 했고 항상 술을 마셨다.
사업도 내외적으로 복잡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고 아이 둘은 시시때때로 아팠고 챙겨야 될 것도 많았는데 여기에 시모의 불가사의한 언행들이 더해져 도저히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에까지 몰렸다. 이는 곧 알코올에 더 의존하게끔 만들었는데 술을 안 마시면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고 늘 집 근처 호프집에서 맥주를 여러 잔 마신 후 약간 취기가 오른 뒤에나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취하면 시모의 말이 들리지 않았고 그녀의 모습도 아른거리고 확실히 보이지 않아 마음이 다소 편해졌다.
무엇보다 난 두 아이의 엄마였다. 고부갈등 때문에 엄마임을 잊은 건가?
이즈음 시아버지가 집 근처에 '꽃밭 공원'에서 만나자고 제안했고 남편은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시부가 처음에는 나와 먼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해서 혼자 그곳으로 갔다.
어두컴컴한 공원. 한여름 공원 입구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가득했지만 그 어떤 향기도 나지 않았다.
‘야생화는 꽃 향기가 나지 않나?’
시아버지가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계셨고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시부는 성격이 급해서 바로 본론이 나온다.
“에미야, 당분간 네 시어머니 데리고 다른 곳에 가서 있을라고 한다.이것저것 떨어져 있으면서 생각 좀 하려고...”
“어디요?’
“그건 내가 알아보려고… 네 엄마(시모)도 너 때문에 힘들다고 하고…”
늘 이렇다. 시아버지는 항상 ‘고부갈등’을 우리 가정 불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목했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고부갈등이요?”
“사실 네 성격이 강해서 네 엄마가 힘들어했어. 물론 너도 합가하고 힘들었겠지만…”
“제가 처음부터 강했나요?”
“… 그건, 아니, 그건… 아니, 네가 순종적이진 않잖냐?”
“아버지, 그런 말씀 마세요. 어머니가 저한테 어떻게 했는데 ‘순종’이란 단어를 언급하세요? 요즘에 순종적인 며느리가 어딨어요? 암튼 전 너무 힘들다고요!”
“대한민국 며느리라면 누구라도 다 이런 시기가 있는 법이고 다들 견디고 참고...하면서 세월 지나면 다 극복하고.”
“그런 거 안 할래요. 대한민국 며느리…”
“…뭬야?”
시아버지는 화가 나면 귀가 잘 안 들리셔서 그런지 목소리가 더 커진다.
“아버지. 하나만 물어볼게요.”
“뭐냐! 물어봐! 다 물어봐!”
“아버지는 어머니의 우울증이 저 때문에 악화됐다고 하셨죠? 그런데 어머니 우울증 확실해요? 진단서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아버지 생각에 어머니가 우울증 같아요? 의사한테 직접 들었어요?”
시아버지의 눈언저리가 일그러졌다.
“에미야, 그건…”
“왜 말씀 못하세요? 부부잖아요? 한 번도 같이 병원에 가신 적 없어요?”
“없긴 뭘 없어? 병원을 30년을 다녔는데…………”
“ 네...... "
아니! 나 때문에 악화된 우울증이라고 하더니 갑자기 30년간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녔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