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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시아버지와 며느리(하)

미궁

by 이봄



시어머니의 우울증이 대략 30년 지속되어 왔다는 이야기인지 다시 물어보았다.


“ 어머니가 우울증 치료를 30년 동안 받았다고요?"

"허, 참, 그게, 니 에미(시모)가 옛날부터 우울증이 조금 있다고 해서 약을 전에 좀 먹었었는데 중간에 끊었다가 최근에 상태가 다시 악화돼 다시 약을 처방받아 먹기 시작했다. 합가하고 나서 더 심해진 것 같아."

"합가는 아버지가 하자고 했잖아요?"

"나도 니 에미가 이렇게 아플 줄 알았냐? 너랑 성향이 너무 안 맞아서 그런 걸 어쩌냐?"

"아버지, 이게 무슨 성향 차이예요? 고부간 성향 차이와는 좀 다르다고요!"

"다르긴 뭐가 달라? 다 그게 그거지."


모든 문제에서 회피하고 책임 소재를 나한테 떠 넘기려는 듯이 보여 짜증이 났다.


"어머니가 여리고 제가 강해서! 그 이유로 어머니가 자주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야밤에 애를 벌거벗겨 밖으로 데리고 나가 배회하는 거예요? 진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상하잖아요?"

"참.. 너는 나를 이겨 먹을 작정이구나!"

"전 사실을 알고 싶은 거지, 아버지와 싸울 생각 없어요. 싸울 체력도 없고요."

"며느리가 따박따박 말대꾸에, 참! 너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러나… 더 이상 너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듯이 걸어갔다. 늘 피하려고만 하는 아버지의 뒷모습.

시아버지는 평소 다른 동년배에 비해서 권위적이 모습이 없으신 편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분이신데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화를 내고 맥락도 없이 계속 ‘성향 차이”라고 밀어붙이신다.




시아버지가 집에 가신 후 난 벤치에 앉았다. 간혹 운동하는 사람도 있고 산책하는 부부들도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아버지도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40년 이상을 같이 산 부부인데 아버지는 어머니의 우울증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그리고 병원을 대략 30년 간 다녔다면 가족들이 어머니의 병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누군가 저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 왔다. 남편이다.


“여보! 아버지랑 얘기 잘했어? 당분간 엄마 모시고 다른 곳에 가 계시겠대지?”

“응. 어머니가 나 때문에 아프대…”

“뭐라고?”

“나 때문에 아프다는데… 몸이 아픈지… 마음이 아픈지 나도 모르겠네?”


그날 밤 난 무엇보다도 ‘진실’을 알고 싶었다.


“왜 나한테 결혼 전에 어머니 마음이 아프다는 얘길 안 했어?”

“했어. 우리 엄마 우울증 좀 있는 것 같다고…”

“그게 말이야. 내 생각에는…”


나에겐 시어머니지만 남편에게는 낳아주고 길러주신 친모다. 내가 혹시 그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게 아닐까, 약간 염려는 되었지만 이 시점에 난 사업을 벌여놓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가고 있는데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다!'란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말을 이어갔다.


“ 그게 말이야. 그때 난 그 '우울증'이란 것이 온 국민이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우울증이라고 생각했지…30년이나 병원 처방을 받아야 할 정도 까진 지는 생각을 못 했지.”



그때...


그의 눈가에 뭔가 촉촉한 것들이 맴돌며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며늘아! 시어미가 아픈 건 다 너 때문!!!'

'흠... 그거 아닌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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