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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시아버지의 발톱

시아버지는 왜 나에게 합가를 제안했는가?

by 이봄

나는 결혼 후 10년간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8년 전 이야기.



22화에서 일어났던,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이 사건을 두고 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날 밤 아이들이 베이비시터 이모님과 한 방에서 자는 걸 확인한 후 시아버지에게 밖에서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했고 시아버지는 나를 따라왔다. 남편은 시어머니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다가 밤늦은 시간에 혼자 돌아왔다.


"엄마는 잠시 정숙이네서 쉬실 거야." 남편 여동생네서 또 요양하신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없는 상황에서 난 시아버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머니가 많이 이상해요! 왜 밤에 아기를 발가벗겨서 차도로 다니고 그래요?"

"... 그게 요즘 너랑 고부갈등으로 스트레스를 좀 받았나 봐."

"네? 네? 그걸 말씀이라고 하세요???"

"뭐, 네가 좀 성격이 강한 스타일이잖냐? 너랑 잘 안 맞아 스트레스받아서 우울증이 심해졌는지... 허, 참..."

"... 네? 저랑 성향이 안 맞아 우울증이 심해져 이상 행동을 한다고요?"




갑자기 몇 달 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난 방에서 쉬고 있는데 밖에서 시부모님이 큰소리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방문을 닫아 놓았는데도 시아버지의 목소리가 워낙 쩌렁쩌렁 울려서 전부 다 들렸다.


"여보, 당신 그 발톱 좀 깎아요." 시어머니가 말했다.

"나중에, 이 신문마저 다 읽고." 시아버지는 나중에 깎는다고 했다.

"여보, 당신 그 발톱 보기 흉해요. 지금 깎아요."

"아, 진짜, 신문마저 읽고 깎는다잖아!"

"여보, 내가 깎아줄게. 정말 흉해서 그래."

"저리 비켜! 신문도 못 보게 옆에서 난리야!"

"여보! 그 발 좀 줘 봐. 그 발톱 내가 깨끗이 깎아줄게! 그 발톱! 당신 발톱! 발! 톱!"

"이 여자가 왜 이래? 그놈의 ㅇㅇㅇ을 쫙 찢어놓기 전에 그 입 ㅇㅇ!" 쌍욕을 해대는 시아버지.

" 뭐라고요?... 흑흑흑"

"지가 잘못해 놓고 울긴 왜 울어! ㅇㅇㅇ아!"

"난 단지 당신 발톱을....... 흑흑흑..."통곡하는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현관문을 '꽝' 닫고 나가는 소리까지 크게 들려왔다.



방에서 두 분의 싸움을 듣던 난 생각했다.

'아니, '발톱'가지고 저렇게 싸울 일인가?'


그때! 바로 그때! 갑자기 시어머니가 내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흑흑흑, 에미야! 네 시아버지가 집을 나갔다... 흑흑흑"

"찜질방이나 가셨겠죠. 왜 그렇게 우세요?"

"흑흑... 너 그거 아니? 네 시아버지가 왜 나한테 욕하는지?"

"네? " 어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

"네 시아버지는 고졸이고 난 대졸이라서 늘 나에게 열등감을 느껴서 날 괴롭히면서 자기의 열등감을 해소하려고 하는 거야... 흑흑... 그래야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뭔 소리예요? 어머니... 발톱 때문에 싸우시더구먼요."

"... 들었니?"


시아버지는 열등감을 느끼는 분이 절대 아니다. 그 당시 서울 최고의 명문 K고교를 나왔다고 지금도 자부심이 있고 정확히 말하면 대학도 중퇴다. 서울 의대 못 갈 바에는 대학 졸업의 의미가 없다고 스스로 자퇴하신 것이고, 그 이후 사업에 뛰어드셨다. 그런데 무슨 열등감인가?


한동안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으시더니 이후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알 수 없는 말들을 이어갔다. 횡설수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하셔서 시어머니를 방에다 모셔다 드렸더니 침대 위에 바로 꼬꾸라지셨다. 그리고 천장을 바라보면서 큰 눈을 뜨고 주무셨다.




그렇다!

베이비시터 이모님은 나에게 어제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대판 싸웠는데 마지막에 아버지가 쌍욕을 하니 이내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바람이나 쐬러 나간다며 마침 거실에서 놀고 있던 내 아들을 그냥 데리고 나간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랑 싸우면 항상 심신이 불안정해졌고 눈의 초점이 사라졌다. 그리고 거짓말로 횡설수설하신 후 실신하셨고, 급기야 응급실로 실려갔다. 병원에서는 혈압만 조금 높으니 안정을 취하면 된다고 입원을 거절했다.


한 달에 1~2번 싸우고 집안은 난리가 나고 응급실에 실려가고, 병원에서는 빨리 나가라고 입원을 거절하고, 시어머니는 다시 돌아오고 이 악순환 속에서 도대체 왜 시아버지는 나에게 '합가'를 제안한 것일까? 시어머니는 '합가'를 싫다고 했는데도 시어머니의 말을 무시하고 왜 합가를 계속 제안했을까? 겉으로는 우리의 사업을 직접적으로 못 도와주니 우리가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아기들을 봐주겠다고 미끼를 던져놓고 결국 아기도 못 돌보면서 말이다.


당장은 많지도 않은 모든 돈이 사업에 투자되어 분가를 바로 실행할 수 없는데 사면초가가 아닐 수 없었다.

나도 몸이 아프고 집에 오면 쉬고 싶은데 시부모님의 싸움 때문에 나와 우리 아이들까지 심신이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하루라도 제대로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날이 없었다.


시아버지의 발톱은 또 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회피형 시아버지가 나에게 합가를 제안했던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허, 참... 고부갈등이 무섭구먼?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존경하고 시어미는 며느리를 아끼면 되는 거 아니냐? 하하... 그럼 난 이만 나간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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