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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읽고...

미래의 역사.

by 이병철



공교롭게도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구매해 두고 있던 중에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시 읽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니체의 철학을 먼저 고민해보길 잘한 것 같고 실제로 유발 하라리는 군데군데 니체의 사상을 인용하기도 한다.


[호모 데우스]의 뜻을 굳이 번역을 한다면 ‘神이 된 인간’ 정도로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책의 이해를 위한 키워드는 알고리즘(algorithm)이다.

알고리즘이란 사전적 풀이를 빌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명확한 절차와 규칙의 집합 즉,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계별로 수행해야 할 작업이라 정의한다.

정보 혹은 데이터를 입력하면 일련의 프로세스를 거쳐 출력물이 나오는데 이 전반적인 과정을 알고리즘이라 할 수도 있고 프로세스 단계만을 지칭하기도 하기도 하며, 방법론적인 면을 지칭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요리 레시피가 알고리즘의 좋은 예가 될 수 있고 인터넷 검색을 할 때 포털 사이트마다 고유의 검색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출력물을 제시하는 경우 등을 연상하면 되겠다.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중세 전쟁사 전공답게 역사 지식을 골격으로 하여 인류학, 생물화학, 생리학, 유전공학, 종교학, 철학 그리고 소위 4차 혁명이라 일컫는 기술 과학에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고 있다.

[호모 데우스]의 내용은 심오하다 생각하면 그 끝이 없고, 축약을 해버리면 마치 스포일러 당한 영화 같은 느낌이다.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호모 사피엔스의 기술 과학의 발전 속도와 업적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또 하나는 인간의 정신세계의 진화 과정과 인간의 영혼, 마음과 감정이 정점에 도달한 과학 기술과 만날 때 어떠한 도덕적 윤리적 문제에 직면할 것인지 커다란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하라리는 지난 70만 년 동안 생존과 발전을 거듭해온 호모 사피엔스의 시간들을 기아, 역병, 전쟁으로 점철된 과정이었다고 단언한다. 우리 인류의 지난 시간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그리고 병들어 죽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게다가 눈만 뜨면 전쟁의 참화 속에서 고통받아온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오늘날 인류는 이런 기아, 역병,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 삶의 질과 행복을 추구하기 시작한다(물론 현재도 지역적으로 전쟁이 진행 중이고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도 있으며 코로나 같은 팬데믹의 재현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역사상 가장 평온한 시절을 구가(謳歌)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인류는 기아- 역병-전쟁의 단계를 넘어 불멸-행복-신성(神性)의 차원으로 기술 발전을 이어간다.

-불멸의 호모 데우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의료혁명으로 이어져 생물학적 불멸의 단계에 이를 수 있다. 유전자 편집, 나노기술, 인공 장기에 관한 발전은 죽음을 '기술적 문제'로 다루기 시작한다.

이는 인간이 神의 영역에 도전하는 호모 데우스로 진화하는 과정으로 생각된다.

-행복 제조기 호모 데우스

하라리는 행복이라는 것도 뇌의 생화학적 과정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항우울제, 유전자 편집, 뇌와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통해 불쾌한 감정을 제거하고 인위적으로 행복을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 또한 죽음과 마찬가지로 기술적 문제로 다뤄지며 비록 인공적이지만 쾌락과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논리이다.

- 신성(神性)을 항한 호모 데우스

앞으로 인류는 과학기술을 통해 신과 유사한 능력을 가지려는 야망으로서 신성을 얻고자 한다.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하고 자연과 운명을 통제하는 존재로 진화하는 것으로서, 질병치료는 물론 죽음까지 극복하는 마치 신화 속에서 신들이 하던 것처럼 창조와 치유의 영역으로 인간이 실행에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인류의 정신세계는 원시종교부터 그리스로마 신화, 그리스도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들이 호모 사피엔스의 영혼을 지배해왔고, 이런 종교들은 인간을 집단 지도 체제로 묶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하여 위대한 업적을 쌓기도 하고 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 파라오라는 신격화된 존재가 없었다면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같은 유적은 존재하지 못할뿐더러 유럽 곳곳에 있는 성스런 교회 또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중세기는 종교에 의한 문명의 암흑기로서 인간은 자신의 모든 사고와 의식 심지어 소소한 개인생활 모든 것을 종교적 해석에 의존함으로써 자신들이 만든 神의 뜻에 오히려 복종하는 어두운 시기를 거쳤고, 르네상스를 거쳐 홉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등에 의한 인본주의 사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인본주의 사고는 정치체제를 변화시켰고 인권 자유 평등 민주라는 새로운 이념적 가치를 보급하였으며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거를 통한 일련의 제도로 귀결되어 왔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지구와 천체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하늘에는 천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인체에 대한 해부와 뇌 과학의 진전으로 인간 사고의 영역은 유전자와 뉴런과 호르몬의 작동으로 움직여진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즉 유기체는 알고리즘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큰 의미를 가진다.

인간의 사고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생리적 호르몬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서 그 어디에도 정신, 영혼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고 그렇기에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 또한 허상이자 허울일 뿐 유전자와 뉴런과 호르몬 작용에 의한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논리인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정신과 영혼을 지배하는 다양한 형태의 종교들 그리고 현재의 민주적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자유의지라는 것도 사전에 혹은 사후에 충분히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알고리즘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가 된 인간은 데이터敎(Dataism)라는 새로운 종교를 숭배할 수밖에 없는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내가 주고받는 메일과 통화, 구매한 도서 그리고 접촉한 사람들을 데이터화 하여 분석한 자료라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이터교를 숭배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의사결정(진로, 직업, 심지어 결혼 상대자 등을 포함한)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데이터베이스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데이터교를 숭배하는 호모 데우스.

신이 된 인간이 추종하는 종교는 바로 데이터교가 된다.

우리가 만든 AI와 로봇 그리고 끊임없이 축적되어 가며 자기발전을 지속하는 데이터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류의 미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P/S

이 책의 부제가 '미래의 역사'이다.

역사란 과거를 더듬어 미래를 추론하는 것인데 미래에 대한 역사라고 한 하라리의 의도는 무엇일까?

미래의 일이지만 미래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자 그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리라는 것이다. 서두에 이 책의 큰 가닥만 잡고자하면 스포일러 당한 영화같을 것이라고 한 것처럼 모두들 예측하는 범주내에 머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논리적 근거없이 극단적 상상에 의존하는 공상과학 작품과 달리,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데우스로 진화되는 과정을 매우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물론 호모 데우스가 종교처럼 모시게 될 데이터교의 시대가 펼쳐진다면 그로 인해 파생될 정보 독점의 문제, 윤리적, 도덕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당연히 우리의 몫이기도 하고 당장 딱히 떠오르는 해결책도 없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그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작은 뇌는 여태껏 이 보다 더한 것도 이겨왔기 때문이다.


호모 데우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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