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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Jul 16. 2024

습지의 크리스마스


 통곡물 시리얼의 포장지 뒷면에는 영양정보가 있어. 하지만 타인의 마음은 어떤 구성인지 훤히 보이지 않을 때도 많아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 새콤달콤을 생각하면 침이 고이는 것처럼 너를 떠올리면 손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해. 손금 사이로 흘러내려 땀이 마음까지 흐르는 것 같아. 그래서 입도 미끌거리고 손가락도 이상한 문장들을 만들어 내는 거 아닌가. 답지 않게 새초롬한 말을 하고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려. 좋아하는 걸 얻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이야. 모르는 구성에 맞추기 위해 이상한 구성으로 변하는 일? 그게 너를 품은 나라고 생각해.

 어느 날은 심장을 두 손에 든 채로 너의 집 앞에서 눈이 마주쳤어. 새벽 사이 몰래 우편함에 두고 올 생각이었는데, 딱 들켰지 뭐야. 돌아보지 않는 시선에 가닿고 싶어서 수면 아래로 발장구를 쳤어. 미안, 아마 너도 느꼈겠지. 그런데 너는 이 새벽에 어디까지 다녀온 거야? 가슴이 텅 빈 채로 말이야. 우린 어색한 웃음을 지었어. 너는 다 가려지지도 않는 너의 텅 빈 공간을 가리며 살금살금 인터폰 앞으로 갔지. 다 알아, 안 가려도 되는데 바보 말미잘.

 크리스마스의 빨간 양말 안에 네가 들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 뭘 받고 싶냐는 말에 준비된 것처럼 바로 든 생각이었어. 12월 24일에는 네가 친구들과 함께 있는 사진을 봤어. 네 심장을 두고 온 애가 누군지 바로 알겠더라고. 어쩜 사진 하나 찍는데 그렇게 마음을 못 숨기니. 곁눈질을 하며 눈이 물결처럼 휜 채로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어. 좋아 보여. 그러니까 나는 잠시간 담아두기로 했지. 가끔 너의 소식을 알 수 있으면 만족할래. 네가 얼른 차오르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기로 했지. 이따금 혼자 놓인 방에서 주먹을 쥐고 내 몸을 관통해 보며 약간 슬퍼지겠지만 괜찮아. 넌 오늘 밤 빨간 포대 자루에 몸을 구겨 넣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굴뚝을 넘다가 네 몸에 생채기라도 나면 어쩌니. 나는 걸어둔 빨간 양말을 차곡차곡 접어 옷장에 넣어두기로 했어.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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