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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Jul 17. 2024

칠석

 

 그래, 7월이었다. 너를 만난 건 여름이 한창이던 때란 말이야.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건네면 좋을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잠 못 드는 밤의 기록은 메모장을 빼곡하게 채우고. 휴대전화를 무거워지게 만들었어. 나는 멋대로 너라는 사람을 상상하며 깊이 자꾸만 깊이 빠져들고 말아. 이기적인 나의 상상력 속에서 완전무결한 너는 지금 뭘 하고 있니. 이렇게 말하지만 너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귀엽다고 생각했어. 너는 귀여운 사람이야. 우리 함께 무얼 해보면 안 되겠어? 1년에 딱 하루라도 얼굴을 보고 싶어. 딱 하루만 다시 볼 수 있다면 참 좋겠어. 푹푹 찌는 여름이더라도 산뜻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길을 나설 수 있을 것 같아. 거센 비에 우산이 뒤집어져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신호를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 어떤 건 너무 좋아서 자주 들여다볼 수가 없는 게 있어. 이를테면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1년에 한 번씩만 보기로 정하는 거야. 또 울고 싶거든. 다시 볼 때는 다른 장면에서 울지만 말이야. 혹시라도 내가 이 영화의 러닝 타임 동안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어쩌지. 그래서 기간을 정해두는 것들이 있어. 난 말이야, 너를 오래오래 푹 끓여서 보고 싶어. 그런데 여름의 과즙 같은 너를 한 손에 쥐었다가 펑. 소리를 내며 터져 버리면 어쩌지. 나는 그런 걱정을 해. 하지만 네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면, 애초부터 내가 안중에도 없었다면. 나는 검은 털을 뒤집어쓰고 까마귀가 되고 말 거야. 내 몸을 지르밟고 나아가렴. 그에게로, 그녀에게로. 등이 다 벗겨진 채로 웃으며 보내줄게. 울어도 뒤에서 울고 말 거야. 이건 뒷배경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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