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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Jul 18. 2024

부레옥잠

그냥 그런 나를 좋아해 줘.


사람을 바꿔가며 만나고 싶지가 않다. 있는 그대로 사랑

하지 않을 거면

사랑

하지 않을래


내 입안에 써 내린 네 이름이 퍼석해서 물을 들이켜고 말아. 내 몸이 한숨에 날아가버릴 수 있더라면 사라진 길 위에는 생각만이 동동 떠다닐까.


사랑할 때는 사랑글을 안 쓰고 써지지도 않고. 사랑하지 않아서 사랑글을 써. 지나서야 들여다보는 마음에 대하여.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좋았다. 나의 활자는 수경식물이라 물속을 깊이 뿌리내리고 물 위로 퍼져나가는 길. 싹이 트지 않기를 바라. 기어코 손톱이 가볍게 움직이는 날에는 솟아 오른 가지가 여린 살을 파고들고- 팔이 서서히 부풀고 말아. 웅크려 눈물 흘리고 연필을 손에 쥐고 말지. 흔들지 말아 줘. 흔들리지도 말고. 적당한 거리로 거기 오래 남아줘. 꺾이고 넘어지면 쓰리다. 단단한 게 부러지면 쓰라린 게 조금 낯설어서, 세상의 안쪽은 이리도 여린 거야. 다들 어쩌다 단단해졌어, 응? 하고 물어도 대답은 없고. 불빛이 이따금 반짝이던 아이스크림 가게의 간판이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그런데 왜 내 발이 녹아 흐르는 거야. 나의 뿌리는 어디에 잠겨 있는 거야. 헤매다가 눈을 감으면 발끝에서 흙 비린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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