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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Jul 23. 2024

너는 어느 벽을 지우고 있는 거니.


머리카락이 무거워진다. 샤워기 호스에서 물 비린내가 났다. 어깨를 타고 뚝뚝 내리는 물방울은 따뜻했다. 손잡이가 파란 쪽에 맞춰져 있었는데, 분명. 나체로 거울 앞에 서면 앙 다문 입이 굳어 있었다. 몇 번씩이고 수건을 찢어 욕조로 던졌다. 샴푸를 펌핑해서 손바닥에 올려두면 그새 손등이 미끄러워졌다. 손목에 미끄러운 게 타고 흐를 때 그 부분만 파내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손이 언제부턴가 건조해졌다. 자주 거품을 낸다. 조각 천으로 넘실거리는 욕조에 몸을 구겨 넣고 표백제를 탈탈 털어 넣었다. 색색이 염색된 것들의 물이 빠져나왔다. 군데군데 얼룩진 모양이 남아 있지만 나는, 하얗게 변하질 않았다. 얇은 손톱으로는 페인트칠을 벗겨내질 못했다. 무릎 아래서 하얀 버섯이 자라나고 있다. 녹이 슬기를 기다리면서, 타일 바닥의 틈을 자꾸만 긁어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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