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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Jul 29. 2024

반항적 순응


 앤은 동공이 살짝 풀린 눈으로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빛이 사람을 집어삼킬 거야. 이름이 걸음을 멈추게 할 거야. 길이 길을 잃게 할 거야. 견고하게 세운 벽이야 말로 박살 나고 말 거야. 질서는 혼돈에 빠지고 말 거야. 결국 ?를 지우고 말 거야.


  뭔가 다른 이유가 필요해. 때때로 바닷가에서 조개를 들고 오거나 산에서 도토리를 주먹에 쥐고 오며 앤은 말했다.

- 나는 세상에 맞서 싸우고 말겠어.


 앤이 세 시간에 걸쳐 완성한 비행기 모형이 아무렇게나 뒤뜰에 버려져 있던 걸 발견하고만 아홉 살 무렵, 지독한 악동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앤은 반항했다. 이를테면 수업 시간에 복도로 뛰쳐나가거나 마트에서 사탕을 훔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기준을 벗어나는 일에만 집중하면 결국 누구보다도 그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떤 지점이 존재한다.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그러한 지점. 목소리가 굵어지고 발톱이 단단해질수록 그 지점은 납득하지 못한 채로 굳어진다.


 찰나를 계속해서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빛이 어둠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앤의 피난처는 의자로 세운 담요 텐트 아래, 기어서 들어가야만 했던 그늘이었다. 눈으로 보는 것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앤은 깨달았다. 세상의 것들은 모두 홀로 태어나 죽어간다는 사실을. 악동이 되기로 다짐한 순간부터 세상에 순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물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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