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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Aug 01. 2024

만세


 어깨너비도 채 되지 않는 크기의 창 안으로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부터 바닥에는 벽의 그림자가 길게 만들어졌다. 공기가 낮게 깔린 창고 안은 푸른곰팡이 냄새가 났다. 그 속엔 미묘하게 코를 찌르는 비린내가 섞여 음습한 분위기를 더했다.

 분명 우리 조 애들과 체육 창고 정리를 같이 하기로 했는데 어쩌다가 굳게 닫힌 문의 손잡이는 헛돌 뿐이고 나 혼자 동물 흉내를 내게 된 걸까. 그건 어디서부터 시작된 일인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만한 충분한 시간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발가락 끝이 서서히 젖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발을 적시는 미지의 액체에 대한 불안한 마음으로 발을 들어보았다.

 그 순간, 테이프를 붙였다 떼는 것처럼 찐득한 소리가 났다. 덕분에 바닥의 나무칠이 조금 벗겨지고, 초록빛의 진액이 하얀 양말을 물들였다. 나는 그걸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군데군데 박힌 가시가 천을 뚫고 살을 파고들 것 같았다. 찔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양말을 벗고 뒤집은 채로 벗겨진 나무칠 위에 얹어 두었다. 안쪽에선 여전히 초록이 우글거렸다.

 여기까지가 어쩌다가 내가 벽을 걷게 되었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벗겨진 신발. 양말마저 벗은 맨발로는 도저히 바닥을 걸을 수가 없다. 발바닥은 제법 끈끈해져서 중력을 이겨내기에 충분했다. 천장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건, 내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 깨닫는다. 나는 두 손을 엑스자로 교차하여 팔을 감싸 안으며 박쥐와 닮은 점이 많지 않나 생각했다. 빛이 없을 때 활동 반경이 넓어진다는 사실도 그랬다.

 거꾸로 본 세상은 곰팡이가 구름처럼 보이는데 제법 아름답고 실은 바닥의 키가 가장 크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내 옷이 전부 젖어들다가 마침내 얼굴까지 뒤덮일 때 그만 눈을 감고 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슬픈 표정으로 바닥의 목을 자꾸만 밟고 선다. 그때 둔탁한 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두 손을 모아서 벽에 귀를 가져다 댔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견고하게 짜인 세트장이었다.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만세. 그때부터 뼈가 살을 뚫고 나와 가시가 돋아난다.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작은 화분에 옮겨져 이름표를 받아 들었을 때, 적혀있던 다섯 글자만 기억한다.


 만세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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