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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Jul 31. 2024

공벌레


손목 관절을 우두둑 꺾거나

주먹을 쥐고 코 끝에 비벼댈 때

몸의 한 귀퉁이가 느껴지곤 했다

언제쯤 나도 둥글어져서 세상을 굴러다닐 수 있을까

침대에 가만 누워서 생각한다

조금씩 굴러서 저 멀리까지 닿을 수 있다면

책상 아래로 굴러 떨어진 두루마리 휴지는

순식간에 소파 아래로 뻗어나가고

길게 늘어진 걸 조심스레 돌돌 말아봐도

울퉁불퉁해진 표면이 이르기를

내장이 쏟아지고 말았다고

넘어지면 새롭게 쓰이는 이야기

웅덩이에 빠뜨린 공책은

처음 펼쳐본 내용이 되었지

분수처럼 아래에서 모두 모이게 될 뿐인데

결국 언젠가 들여다보게 되고

바닥을

아프고 나면 잔뜩 부푸니까

앞으로 나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구르며 둥글려진 이야기가 있다

듣다 보니 좋아진 이야기도 있다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다

무르거나 단단하지 않게

한 줄기 헤엄치고

꺾인 허리가 아프지만

오랫동안 구르기를 해나간다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진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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