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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Aug 04. 2024

얼음 땡


뭐야, 다들 어디 가고. 왜 달랑 테이블만 두었어. 어떻게들 앉으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널 좀 봐. 내 몸이 언제부터 오크빛을 내었던 건지 나는 잘 모르겠더라고. 모닥불이 나를 집어삼켰을 때? 누군가 나에게 의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난 다리도 불편한데 누굴 앉히겠어, 그러니까 여기에 나를 둔 누군가는 참 어리석은 거야.


너는 왜 내 모습을 하고 있어?


아, 확신이 없어지기 시작했을 때가 불길로 몸을 던졌던 순간부터였나. 발목이 부러져 창고로 끌려 나가고, 뼈가 자리를 못 잡아 이후 내내 살짝 비뚤어져 있던 거야. 데이지는 신문을 세 번 접어서 내 발밑에 껴두곤 했지. 매번 종이를 다시 접어야 한다고 투덜거리며 삐쭉 솟던 그 애 입술이 생각나.


당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고.


실은 그거 내가 소화시키고 말았거든. 그래서 내가 의자인 걸 잊고 있었나? 흉내 낼수록 필사적으로 나를 끌어내리는 것만 같아. 의자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오랫동안 생각했어.


(돌려놔.)


나는 늘 누군가의 엉덩이에 깔리거나 발바닥에 채기만 해. 생각할 시간은 많아. 생각할 시간이 많으면 가만 들여다보게 돼. 나 대신 누굴 앉혀야 하나? 저열한 충동이 일었어. 어느 날 햇빛이 벌어진 커튼 틈으로 들어왔지.


나는 마침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만 거야. 그러니 데이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지 마. 길이가 다른 다리를 들썩여봤자 아무도 알아듣질 못하거든.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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