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유 Aug 05. 2024

100 530


칠석 77시, 44분. 너에게 문자가 왔다. 이상하다,


- 걱정 마.


읽음 표시가 사라지자, 너는 감쪽 같이 흔적을 지운다. 이 세상에 존재한 적 없던 것처럼.


조금 더 길게 써주지 그랬어. 밤마다 불러내는 건 내 의지가 아니야. 이러나저러나 불려 나온다는 건 마찬가지지. 여전히 나는 제멋대로고 너는 제법 힘들겠다 싶어. 언제 네가 말했지. 웃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고. 그래서 그런가. 너의 표정이 어떻길래, 자꾸 네 뒷모습만 보여줘. 걸음이 언제부터 그렇게 빨라졌어. 너는 분명 너인데 이렇게 볼 때마다 순 엉터리야. 심술이라도 부리고 싶은 거야, 혹시. 매번 손을 잡고 얼굴을 보려고 하는 순간마다 네가 훌쩍 떠나버린다.


지난주에는 너의 뒤를 따라 산을 올랐는데, 숨이 전혀 차질 않는 게 신기했어. 계단이 징그럽게 꿈틀거렸는데 그걸 손바닥에 올려두고 쓰다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니까, 그래. 그렇게 우리 한참을 말없이 올랐지. 잠깐 멈춰 설 때마다 네가 뒤를 돌아볼까 기대했어. 그리고 솔직히 두려웠어. 얼굴이 없으면 어쩌지, 그러면 나는 너의 눈 코 입을 어디서 찾아와야 할까. 정상에 다다르니까 네가 없어졌어. 아래로 갔니, 위로 간 거니. 아님 여전히 거기 있니. 쪼그려 앉아서 위아래를 번갈아 보다가 다리가 휘청했어. 그때 다리가 무너졌어.


답장 안 해줄 거면서 연락은 왜 했어.


넌 어떤 눈으로 어떤 말을 하고 싶어서 입술을 움직이고 있어. 숨을 쉴 때 무슨 향을 맡아, 난 음료수에 빠져서 녹아버린 솜사탕 향이 달게 코를 찔러. 네 가슴을 퍽퍽 칠 수가 없어서 난 내 가슴을 퍽퍽 치며 물어. 그럴 때면 가끔 정말 문득, 갑자기 호흡이 이상해질 때도 있어. 너의 몸이 망가지는 동안 나도 같이 무너졌나 봐.


너의 사는 죽음 아닌 사랑의 사.



매거진의 이전글 얼음 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