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유 Aug 25. 2024

배설합니다.


멈출까 했다. 어제는 화가 너무 많이 나서,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왔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싶을 때가 있다. 요즘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실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쭉 안 자고 버텨볼까 했는데 누적된 감정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아서 자기로 결심했다.


이를 빠득빠득 갈았나 보다. 볼 안쪽에 가로선이 생겼다.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사람이 정말 싫다. 끝장나게 싫은 것들로 가득한 밤. 소모하는 것들로 내가 비워지는 건, 확실히 내 스타일은 아니야. 응, 확실히 그건 아니다. 나에게 내가 무척 해롭다. 그냥 훌쩍 떠나버리기로 정했다. 새벽 1시 21분, 현관문 손잡이 하나를 못 돌려서 나가지 않았다. 나가지 못했다.


이상한 세상이야. 나도 같이 미쳐버릴 것 같다. 그러니까, 중요한 서사는 그건 삶이다. 삶. 살아야 하므로 삶.

심장이 쿵쿵 내려앉고 숨이 가빠온다.

기괴하고 흉측하고 징그러운 거 차라리 알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나라고 알게 된 걸 부정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멈추려고 했다. 얼마간 글을 올리지 않아 볼까 했다.  

적당히 다운된 상태로 쓰는 글은 좋아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그저 하소연 말고 뭐가 없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내가 처음 글을 썼던 행위는 배설에 가까웠다. 어째서 배설이냐 하느냐면 그때 나는 많이 지쳤고 편해지고 싶었다. 편해지고 싶어서 스크롤을 뒤적거린 선택지 중 많은 것들은 위험성이 높다. 그래서 스스로 항목 추가를 해본 것이다. 항목 추가.


가족에게조차 속얘기 터놓는 건 여전히 어렵다. 하물며 친구나 애인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래서 늘 혼자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얻은 건 한 가닥 뽑지 않은 흰머리. 아무튼 글을 썼다.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버렸다. 손가락을 툭툭 움직이면 금세 몇 페이지가 나왔다. 그리고 다신 읽지 않았다. 21년 겨울 글은 그 뒤로 몇 번 읽어봤지만, 올리진 못하겠다. 아니다, 언젠간 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배설이다. 깔끔하게 다시 말하자면, 힘듦을 자각하기 위해 써 내린 글들. 그러한 것들은 쓰는 동안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았기에 배설이다. 글을 쓴 나 스스로조차도 애써 무시하는 기억 저편의 것들.


그래서 어제도 배설을 했다.

덕분에 오늘 글을 쓴다. 아니지, 이 글도 사실은 배설.

오늘 올리지 않으면 분명 내년에 후회할 것 같아서,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으려고 적었다.

형태 불분명한 글을 불분명한 마음으로 적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습지의 메아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