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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Aug 30. 2024

해진 가죽 나뭇잎 책장


샤인머스캣 맛 풍선껌을 부풀리며 철도에 섰어. 왜 이건 신 맛이 없고 달기만 한 거야? 전부 신 맛만 나는 건 아니었구나. 내가 씹던 껌들은 자주 셔서 침이 질질 새곤 했는데. 다 녹아버린 창틀엔 꼿꼿하게 유리창이 붙어 있지. 환풍구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날 헤엄치게 해. 운동화에 흙이 너무 많이 들어갔나. 발이 자주 아파와.

맨발로 걷자. 얼룩진 문을 보았니, 가까이서 보니까 벌레가 딱 붙어 꼼짝을 못 하더라고. 끈적하게 붙은 건 누군가 던진 캔에서 흘러나온 음료수의 혈액. 나도 손가락을 붙였다가 떼 보았어. 바로 아래 찌그러진 캔이 보여. 누군가 뱉어둔 한숨을 주워서 주머니에 넣었지. 알맹이가 없는 건 보잘것 없어지는 일. 그렇게 믿기를 하루이틀이 아닌 거지. 믿음이 강해지면 없는 것도 생겨난다는데.

아니지, 믿음이 강해지면 없앨 수가 없는 거지. 책장에 꽂힌 책 중에 가장 얇은 책 한 권을 뽑았어. 손가락을 구겨가며 힘들게 뽑았단 말이야, 근데 왜 티가 안 나지.

책장에 꽂힌 책 중에 가장 두꺼운 책을 뽑았어. 제법 수월했지, 그러자 책들이 와르르 쏟아졌던 거야.

레일 사이에 몸이 꼭 맞더라고. 꼭 맞게 누운 채로 빠져나갈 준비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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