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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Aug 31. 2024

단상

_ 발견



덩그러니 놓인 휴식의 신호. 이곳의 하루도 느긋하게 흘러간다.


느긋한 모습이 더해주는 마당 한구석의 온기. 부르짖거나 발톱을 세우지고 않고 다만 눈을 깜박일 뿐이다.


붉은 땅 위에 초라하게 놓인 작은 잎사귀. 소외된 마음은 때때로 특별해서, 돋보일 때가 있다.


설치된 인공물은 오히려 그 안에서 더 자연스럽게 보인다. 흐르는 물은 이끼가 낀 기둥을 영원히 지키려는 듯 다만 맴돌 뿐이다.


돌무더기에 담긴 소망들이 차곡차곡 쌓여 서로 기대어 서 있다.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애틋하고 소중한 진실.



화분이 작고 둥글게 앉아 나를 응시한다. 물을 머금으면 흙은 한층 짙어지고, 화분의 황토색은 한결 선명해진다. 하지만 물의 양을 가늠할 수가 없어서, 언제까지고 물을 부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에 휩싸인 적이 있다. 깊은 곳까지는 적셔지지 않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화분 자체는 작은 세계일지 모른다. 좁은 테두리 안에서만 허락된 삶. 흙이 조금 부족해도, 빛이 덜 비춰도 식물은 그곳에서 자리 잡아야 한다. 언젠가 뿌리가 너무 커져 화분을 깨트릴 때가 오더라도, 지금은 그 한계 속에서 조용히 숨을 쉰다. _ 화분


길모퉁이, 아스팔트 틈, 그 어디라도 어디선가 자라나 있다. 허리를 숙여 가까이 들여다본다. 가는 줄기 위로 촘촘하게 보드라운 털이 돋아있다. 바람이 스치면 작은 꼬리를 흔들며 유연하게 움직인다. 조밀하게 뭉쳐 있는 잔털들이 어딘가 모르게 애틋했다. 못 보고 지나쳐버릴 수도 있을 작은 생명체. 늘 같은 자리에 서서, 제 몫의 시간을 묵묵히 보내고 있다. 복잡한 세상에서는 보잘것없는 풀이지만, 조용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간다. _ 강아지풀


창틀은 경계선이다. 안과 밖을 나누고, 빛과 바람의 스밈을 만드는 통로다. 빗물이 한바탕 휩쓸고 간 창틀엔 먼지가 스며들고 작은 자국을 남긴다. 창문을 열고 닫을 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무릎이 약해지는 것처럼 등이 굽고 지팡이를 짚는 것처럼, 창틀의 나이 듦은 끽끽 지르는 소리 같다. 세월의 흔적을 토해내는 것 같다. 그 자체로 둔 창틀은 아무 말도 하질 않지만, 수많은 이야기를 안다. 안과 밖의 이야기들에 고스란히 머무르며 산다. 분명 두 곳에 모두 존재하지만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에 남아 있다. _ 창틀


도시의 풍경 속에 우뚝 서 있다. 기둥은 무수한 선들을 지탱하며 하늘에 가깝게 뻗어 있다. 전선이 엉켜 있는 모습이 머릿속 같을 때가 있다. 쭉 늘어진 전봇대를 살피며 나도 결국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을까 기대했다. 표면에는 누군가 오래전에 붙여둔 낡은 전단지가 찢겨 있다. 피트니스 센터 전단부터 시작해서 반려동물을 찾는 애타는 마음까지. 그 위로는 빛바랜 흔적들이 남아 있다. 사람들의 무심한 시선을 받아들이며 도시의 소음을 견디고 있다. 늘 혼자임에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존재.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을 버티고 서있다. _ 전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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